■ "우린 조립공장 노동자… 음악으로 감동을 전하죠"
지난달 15일 경기 부천시 부명고등학교. 재학생 1,500여명, 교사와 학부모 2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고, 무대 위에는 트럼펫, 트럼본, 색소폰, 클라리넷 등 관악기를 든 연주자 40여명이 악보를 앞에 두고 연주를 시작했다. 최선용 지휘자의 현란한 손놀림에 따라 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의 눈이 점점 휘둥그래졌다.
분명 전문 연주자들이 아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라고 들었던 학생들은 프로 못지 않은 연주에 자신의 귀를 의심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내 관악기의 웅장하고 감미로운 앙상블에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이날은 특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2학년 정해림 학생이 대중가요 '거위의 꿈'을 불렀고, 윤리담당 이기홍 교사가 가수 김동률의 '감사'를 열창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연주에 나선 이들은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이 공연은 '청소년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였다. 이 음악회는 청소년들의 정서와 감수성을 돋우기 위해 오케스트라가 요청을 받은 중ㆍ고등학교를 찾아가 연주회를 여는 것으로 매월 1~2회씩 지금껏 총 50여회 이상 이어져 오고 있다.
가스레인지 조립공장의 노동자들로 구성된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는 24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최근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국내 유일의 기업 오케스트라인데다 단원 대부분이 음악전공자일 정도로 전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전문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각종 음악행사 초청이 밀려들고 있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이들의 연주를 듣고 "품격과 균형감을 갖춘 국내 최고의 관악 앙상블"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다. 단원 대부분이 평생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가려고 마음먹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과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음악을 접으려던 차에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를 만나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고, 특히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오케스트라 활동 역시 전문 악단 수준으로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품질기술부의 임광옥(32)씨는 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하고 2002년 졸업 후 여군에 지원하려고 마음먹었다. 오로지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음악만 하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간파하고 여군 군악대를 희망했던 것.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활발한 성격의 임씨는 군대의 경직된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때 그에게 한가지 희망이 떠올랐다. 린나이코리아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주변에서는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면서 왜 가스레인지 만드는 공장에 가냐고 했지만 임씨는 이미 그 곳에 가면 음악의 꿈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교시절 밴드부 선생님께서 주신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초청 티켓을 들고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갔어요. 2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들었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열정으로 연주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임씨는 그 해에 린나이코리아 물류관리팀 직원으로 입사했고,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임씨는 "그 때 린나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며 "음악을 계속하며 관객을 통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씨는 현재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트럼펫을 연주하던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음악이 가득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조립 1파트에서 일하는 장유찬(30)씨는 한때 음악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었다. 음대에서 트롬본을 전공하면서 구립 관악단에서 5년간 일했지만 불안정한 수입으로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연주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수입이 많을 때는 200만원 정도를 벌 때도 있었지만 적을 때는 50만원을 겨우 맞추는 수준이었다. 장씨는 "음악을 사랑하긴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고 회상했다.
2007년 그에게도 린나이코리아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장씨는 입사가 조금 꺼려졌다. 이미 일반회사에도 입사원서를 내봤지만 음악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떨어졌고, 주변에서는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겠냐"고 말하던 터였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 입사를 결심했다.
결국 장씨가 옳았다. 요즘 그에게는 같이 음악을 했던 지인들의 전화가 자주 온다. 혹시 공장에 자리가 나면 연락을 해달라는 것이다. 장씨를 통해 공장의 환경과 분위기가 좋고 전폭적으로 음악활동을 지원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간절히 이곳의 입사를 희망하고 있다. 장씨는 "친구들 중 이미 5명 정도가 빈자리가 생기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공장에서 일하긴 하지만 무대에 서고 연주를 통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게 되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린나이코리아 인천 공장 가스레인지 조립 1파트는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들로만 구성된 조립라인이다. 평일 음악연주회가 잡히면 한 조립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연주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한 것이다. 하루 라인을 중단하면 2억원 가까운 손해가 발생하지만 회사의 의지는 단호하다. 음악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는 소외된 지역,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음악이 필요한 곳에 먼저 찾아간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를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재홍 악장은 "20년 넘게 오케스트라가 이어져 온 것은 직원들이 음악으로 하모니를 이뤘기 때문"이라며 "단원들이 음악을 통해 행복을 찾은 만큼 사회 소외계층에게도 음악을 통해 감동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 린나이 사회공헌 활동
가스기기 전문기업 린나이코리아는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해비타트 후원, 무료요리교실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영과 사회 속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우선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는 1986년 기업의 마케팅이 아니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음악 문화를 확산ㆍ보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 때문에 음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는 지역 주민, 청소년 및 소외된 이웃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선 연주회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를 위한 연주회를 열기도 했으며, 강원 오지마을 초등학생들을 초청, 서울 문화 체험과 함께 아이들만을 위한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린나이코리아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사는 소외계층에게 보일러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랑의 보일러 교실'을 후원하고 있는데, 교육생들은 보일러 설치 기술을 배워 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하며 자립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또 수재민, 독거노인 등을 도우며 불우이웃에게는 보일러를 무료로 설치해 주고 있어 이웃 돕기의 향기가 점점 퍼지는 모습이다.
이 뿐만 아니라, 린나이코리아는 2009년부터 한국 해비타트를 후원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국 100세대의 해비타트 주택에 가스레인지를 무상 기증했다. 또 지난해 여름에는 건축공사가 한창이던 무더위 속 봉사자들을 위해 제빙기를 지원하기도 했다.
린나이코리아는 또 여름철 각 가정이 침수 피해를 입게 되면 수해복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침수 피해를 입은 지역의 보일러, 가스레인지를 무상으로 점검 및 수리해주고, 현장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가스 빨래건조기를 설치해 이재민과 봉사자들이 식사와 입을 옷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2006년 집중호우로 전국적으로 큰 수해가 발생했을 때는 서울 양평동, 경기 안성시, 평택시, 강원 평창군 등을 찾아 수해복구에 앞장섰고, 300여 가구를 대상으로 가스기구 수리 서비스, 가스건조기를 활용한 빨래를 처리 등을 도왔다.
인천=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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