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엔 한반도를 빼다 박은 모양의 지형들이 여럿 있다. 강원 영월의 선암마을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을 흐르는 서강이 감싼 한반도 모양의 지세를 감상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작년엔 이곳의 행정지명이 서면에서 아예 한반도면으로 고쳐졌다. 전북 익산의 미륵산 정상 부근에서 보이는 금마저수지는 한반도 모양을 해 '지도연못'이란 이름을 얻었고, 전남 신안의 흑산도엔 파도에 뚫린 구멍이 한반도를 닮아 '지도바위'란 이름을 가진 갯바위가 있다.
한강의 물길이 굽이굽이 흐르는 아리수길 코스에도 또 다른 한반도가 있다. 강물이 강원 정선읍 못미처에 깎아낸 반도 모양의 물굽이 땅이다. 건너편 상정바위산(해발 1,006m)에 오르면 정확한 한반도 모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구분 짓는 북ㆍ중 국경선을 42번 국도가 대신하고, 공교롭게도 정 중앙 휴전선이 있을 위치엔 양 편의 마을을 잇던 옛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이번 아리수길 6코스는 이 한반도 땅덩이와 함께 한다.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한반도 땅을 디디고, 또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강물과 어우러진 한반도 풍경을 멀리서 관조하는 걸음이다.
시작점은 나전에서 정선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반점재다. 해발 450m인 고갯마루엔 '백두대간 등산로'란 생뚱맞은 이름의 산행 안내판이 서있다. 백두대간은 한참 동쪽으로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산줄기다. 덕항산 함백산 태백산에는 가야 그 능선을 탈 수 있다. 이곳의 백두대간은 한반도 모양의 땅 속 그 백두대간을 일컫는 길이다.
산행길은 시작부터 눈을 감동시킨다. 길의 초입, 장대한 솔숲이 펼쳐진다. 42번 국도에서 올라왔으니 중국과의 국경선에서 바로 백두산으로 타고 오르는 길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은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연상시킨다.
20분 정도 솔숲길을 따라가 만난 등산로 삼거리. 이정표는 한반도 지세를 굽어볼 수 있는 상정바위까지 195분이라고 가리킨다. 산행길을 5분 단위로 기록해놓다니. 무지한 건가, 무모한 건가. 바로 옆에 팔각정 전망대가 서있다. 여기가 한반도 지형의 백두산 정상이다. 크게 휘도는 강물을 굽어볼 수 있다.
이제부턴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작은 백두대간 길이다. 이곳의 능선은 실제 백두대간과 많이 닮았다. 솔숲 능선을 지나 다시 올라선 작은 봉우리엔 '금강산'이란 팻말이 박혀있다. 여기서부턴 계속 내리막이다. 강의 높이와 얼추 비슷해질 무렵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난다. 한반도 지형의 딱 중간, 휴전선이 있을 그 위치에 놓인 길이다. 예전 문곡마을과 송오리 마을을 잇던 길이다.
그 길을 건너 다시 산자락으로 오른다. 이제부턴 남한의 영역이다. 급경사를 숨이 차도록 올라 만난 첫 봉우리는 기암들로 가득했다. 남한의 백두대간 첫 산이니 당연히 그 이름은 '설악산'이다. 설악은 역시 설악이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기암의 생김새들이 빼어나다. 다음 봉우리엔 '가리왕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가리왕산은 백두대간에 포함되는 산이 아닌데 왜 이 이름표가 붙었을까. 마을과 가까이 있다고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경치나 위치로 봤을 때 동해의 두타산이라고 했으면 딱 좋았을 것을. 누가 만든 산행길인지 코스엔 백두대간과 상관없는 계룡산도 끼어있었다. 백두대간에 대한 기본 공부가 아쉽다.
태백산을 지나고 속리산을 넘어 지리산을 스쳤다. 걷는 길 내내 바닥은 솔잎으로 가득해 푹신했다. 이따금 만나는 오르막에선 모처럼 흘리는 땀방울로 몸 속의 노폐물을 다 쏟아내고, 제법 짙어진 숲에선 초록의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는 산행길이다. 초록의 보약을 한 사발 들이킨 기분이다.
산길이 끝나는 곳은 한반도 땅끝에 해당하는 월천이다. 고즈넉한 강변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강물이 마을을 휘돌아 나가고, 마당에 누운 황소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어댄다. 마을엔 질박한 아름다움이 스며있다.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걸음을 잇는다. 한반도 지형을 이젠 물 건너에서 바라보는 길이다. 오르락 내리락 걸었던 산능선이 수직의 강 절벽 뼝대 위로 펼쳐졌다. 송오동나루터를 지난 길은 이절잠수교 앞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다리를 건너는 길은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고, 다리 옆 산으로 오르는 길은 인적을 찾기 힘든 옛길이다. 아리수길 걷기는 한적한 옛길로 향했다. 지금은 찾는 이 없어 길엔 풀이 사람 키만큼 자랐다. 예전 정선읍과 여량을 잇던 옛길이 이제 점차 인공의 때를 벗고 자연에 동화하고 있는 것.
기억에서 잊혀진 옛길은 많이 허물어졌다. 산이 무너져 내린 흔적과 강물이 치받은 흔적을 함께 지니고 있다. 길의 폐허. 하지만 그곳엔 지금 녹색의 생명이 우글거린다. 그곳에서 바라본 강물은 예쁜 마을을 품에 안고 S자로 유유히 흘러나가다. 가장 완벽한 한 컷의 강 풍경을 폐허의 길이 담고 있었다.
정선=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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