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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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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입력
2010.06.0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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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독일에서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올 때 슈투트가르트 공항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독일 지도교수가 자신의 차로 우리 식구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출국장 입구 바로 앞에 마침 빈 자리가 있어서 주차를 한 후 짐을 내렸다. 안에 들어가 차를 한 잔 하고 헤어지자 하였더니 안내판을 보고는 이곳은 잠시 정차하는 곳이니 저쪽 주차 빌딩에 가서 차를 세우고 오겠다는 것이다. 이 공항을 몇 번 오가며 자리가 비어 있으면 그냥 세워놓기도 했던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잠시 세워놓고 차 한 잔 하고 나와도 되는데 5분 이내 정차차량만 이용하라는 안내판의 지시를 철저히 따르는 지도교수의 태도에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본격적인 문제는 체크인할 때 일어났다. 세 식구라 얼추 되겠지 하고 짐을 잔뜩 꾸린 게 그만 한도를 초과해 버려 엄청난 비용을 물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카운터의 독일 직원은 아무리 사정을 해도 마냥 빡빡하게만 굴고 시간은 계속 가고 대략 난감 그 자체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내가 카운터에서 짐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데도 지도교수는 개입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누군데 이 사람을 좀 봐주라거나, 짐이 조금 초과된 것을 갖고 그리 빡빡하게 구는가 정도의 말을 해줄 법한데 그러지 않았다. 규칙을 지키고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독일인들의 사고방식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유난히 법과 질서 그리고 규칙을 잘 지킨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여일하게 지시사항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선거나 중앙선거 모두 일요일에 치러도 문제가 없다. 그들을 보며 내 행동을 많이 반성하였다. 규칙을 잘 지키지 않고 가끔 법도 무시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지시사항도 슬쩍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이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통령까지도 아무 거리낌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간단히 파기한다. 4대강 사업에서는 법 절차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한 후에 착공마저도 편법적으로 밀어붙여 지금 온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법을 조금 우습게 보고, 툭하면 무시하고 잘 안 지키려 드는 것일까? 게다가 그런 사람에 대해 관대하기까지 할까?

내 생각으로는 일제시대와 군부독재라는 파행적 현대사를 겪으며 우리의 법의식이 많이 왜곡되어서 그런 것 같다. 일제시대에 법이란 식민지 백성을 억압하는 도구였기에 그 법을 지키지 않고 거기에 맞서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독재정권에서 계속 이어졌다. 독재시대의 법은 국가보안법이나 긴급조치처럼 국민을 탄압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동원된 것이었기에 그에 맞서 싸우거나 위반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우리에게는 법을 무시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풍토가 은연중에 내면화한 것 같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법조인들의 잘못이 크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살 것인가?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민주화되었고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제교류도 부쩍 많아졌다. 이러한 시대에 여전히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우리나라를 규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과 어른들부터, 그리고 정치인과 대통령부터 약속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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