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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자의 진정한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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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자의 진정한 권위

입력
2010.06.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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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국의 어느 로스쿨에서 펴내는 법률잡지(로 리뷰)로부터 논문게재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1년 이상 준비해 온 터라 마치 합격통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무려 1년 가까운 편집과정에서 편집위원(보통 학생들이 담당)과 씨름을 하고 있다. 논문이 시원치 않은 것이 주된 원인이겠으나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한다.

학생들 논문검증 교수가 수긍

편집위원회는 논문의 각주에서 인용한 모든 자료를 다 찾아보았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그 중에 한 자료가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우리 도서관 사서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그런데 사서도 그런 자료가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그 부분이 없어도 논문이 성립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 부분을 통째로 빼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저작권법을 전공하는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차마 편집위원에게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유학 마치고 귀국한 후 끌러보지도 않은 박스를 풀었다. 가죽 같은 먼지를 걷어내고 수 일을 헤맨 끝에 드디어 그 자료를 찾게 되었다.

마침 그 무렵 사서도 검색에 실패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해당 저널의 이름이 바뀌는 바람에 검색되지 않았던 것이다. 박스 속에서 지난 10년간 빛을 보지 못하고 눅어 있었던 논문에는 밑줄이 쳐지고 여백에 한글 낙서가 적혀 있었다. 즉시 그 논문을 스캔해서 미국의 편집위원회에 보냈다.

미국 로스쿨에서 펴내는 수십, 수백 종의 로 리뷰에 실리는 한 해 수 천 편의 논문이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나온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오바마 미국대통령도 하버드 로스쿨 재학 시절 로 리뷰 편집장을 거쳤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학생이 교수의 논문을 편집하면서 표절 여부를 검증한다는 것은 우리 학계 풍토상 상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상상이 멈추고 만다.

1980년대 미국 저작권법 분야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예일대 로 리뷰와 포담대 로 리뷰에 실린 저명 학자들 간의 논쟁이었다. 그런데 제3의 학자가 유명저서에서 이 논쟁은 하버드 로스쿨의 한 학생이 쓴 논문에 의해 해결되었다면서 논의를 종식시켰다. 교수들의 논쟁에 학생이 끼어든 것도 신기하지만 학생의 견해를 존중하여 자신들의 논의를 끝내버린 학자들은 더욱 존경스럽다. 학자의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헤겔은 저작물이 영혼의 소산으로서 인격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았다. 칸트도 자신의 논문이 도둑질 당하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였다. 글이란 인간의 자유와 개성에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서, '작가가 그의 생각에 대하여 갖는 소유권'은 출판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 있다는 칸트의 사상은 오늘날 저작권 개념에 그대로 연결된다.

논문 명의 도용은 '영혼 강탈'

지난 주 한 대학 시간강사가 전임교수가 되지 못함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님께'라는 제목의 유서에 교수들의 논문 약 54편을 대필하였으며 교수는 이름만 들어갔다고 폭로하고 수사를 의뢰하는 내용이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남긴 말을 의심하기 어렵다. 그의 말대로 대필논문이 있었다면 그 논문의 저자로 등재된 교수들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게 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생명을 깎아 쓴 논문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는 영혼을 강탈 당한 것에 다름없다. 자기가 쓴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할 수 없는 현실, 그 타락한 권위에 절망하며 돌아올 수 없는 문턱을 넘어선 젊은 꽃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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