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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판 '칼레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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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판 '칼레의 시민'

입력
2010.06.0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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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Calais)는 도버 해협에 맞닿아 있는 프랑스 북부의 소도시다. 14세기 중반 왕위계승 문제로 발발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 초기인 1345년 노르망디에 상륙한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중 이 도시에서 의외로 완강한 저항에 부닥쳤다. 식량보급선이 끊긴 채 11개월이나 버티는 바람에 전체 작전에도 적잖은 차질이 생겼다. 마침내 항복선언을 받아낸 에드워드 3세는 당초 대학살로 보복하려다 도시 대표자 6명만 처형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신 시민들 스스로 대상자를 선정해 성문 열쇠를 바치라고 명했다.

■ 대학살은 면했으나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선뜻 나서는 이 없이 긴 침묵이 이어지던 끝에 한 사람이 "내가 6명 중 하나가 되겠다"며 일어섰다. 칼레 최고의 재력가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 이어 법률가 시장 등 귀족계급 5명도 앞다퉈 손을 들었다. 다음 날 목에 밧줄을 감고 맨발로 영국군 진지를 찾아온 이들은 처형 직전 기적처럼 목숨을 구하게 된다. 에드워드 3세가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얘기는 동시대 사람인 프로와사르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됐고, 6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본래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를 지칭했다. 1,000여년의 세월을 거쳐 칼레에서 발현된 이 정신을 기리기 위해 1884년 칼레 시장은 오뀌스트 로댕(1840~1917)에게 위대한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로댕이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조각을 본 시민들의 실망은 컸다. 단호한 의지의 초인적 영웅상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각은 그래서 더 유명해졌다.

■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신의 손 로댕'회고전(8월 22일까지)에 가면'칼레의 시민'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순결한 정신과 행적을 떠올리며 조각을 감상하노라면 소란스러웠던 그날의 칼레 시장통에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선진화 지표'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수준을 측정ㆍ비교한 결과 한국은 24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측정한 세부 항목에선 꼴찌를 기록했다. 어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일꾼들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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