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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식 강국'과 경쟁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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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식 강국'과 경쟁 당국

입력
2010.06.0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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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동통신 관련 CDMA 핵심기술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 퀄컴에 2,7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계 표준으로 선정된 특허의 로열티를 차별적으로 부과해 경쟁사업자를 배제한 행위가 사유였다. 이후 '표준 특허'의 남용행위는 사회적 이슈가 됐다.

기술간 호환이 중요한 IT 분야는 표준기술로 선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표준으로 선정돼 초기 수요를 선점하면, 새로운 수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따르기 때문이다. 표준기술이 배타적 사용권을 보장하는 특허에 의해 보호 받는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배가되고 사업자는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국내외 기업들은 차세대 IT기술에 대한 표준특허를 선점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허권자가 독점적 지위를 확장해 표준특허의 강력한 영향력을 남용할 경우 시장의 경쟁질서는 깨질 수 밖에 없다. 퀄컴의 행위는 단적인 사례다. 자신의 모뎀칩 사용여부에 따라 표준특허의 로열티를 차별적으로 부과함으로써 퀄컴은 모뎀칩 시장의 경쟁사업자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해 나갔고 10년여에 걸쳐 시장의 99%를 사실상 독점했다. 표준특허를 토대로 한 기술시장의 독점력을 모뎀칩 시장으로 확장해 나간 것이다. 지식재산권 남용행위를 규율하는 공정위가 특히 표준특허의 남용행위에 큰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월 말 공정위는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 지침'을 전면 개정했다. 지침은 표준으로 선정된 특허권을 남용해 시장의 경쟁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물론, 표준선정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치할 근거 규정도 마련했다. 표준선정 과정에는 관련 특허 정보를 미리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점, 또한 특허 받은 기술을 표준으로 선정할 때는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에 따른 사전 협상이 중요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EU 경쟁 당국 또한 반도체 메모리 관련 기술에 대한 표준선정 과정에 의도적으로 특허출원 사실을 숨긴 램버스(Rambus)의 행위를 문제삼아 로열티 인하를 이끌어 낸 바 있다. 표준선정 과정 내내 특허에 대해 침묵하다가, 자신의 특허가 표준으로 선정되어 널리 이용되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고 높은 로열티를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지식재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 경쟁국들은 시장의 균형 회복을 위한 지식재산권 남용행위 규율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국제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제이기도 하다. 4월 중순 총리실이 입법예고한 지식재산기본법(안)도 '지식재산권의 표준화'를 주요 시책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식재산에 기반한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지식재산권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지식재산권의 보호만 강조할 것은 아니다. 지식재산권을 과도하게 보호할 경우 오히려 후속 기술혁신을 저해하여 국가 전체의 기술개발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지식재산권의 남용은 관련 시장의 경쟁을 질서를 훼손한다. 결국 지식재산권자가 이룩한 혁신적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지식재산권 남용 행위에 대한 시정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재산 강국' 실현을 목표로 지식재산권 보호·육성 정책에 추진력이 실리는 지금, 시장 질서를 수호하는 경쟁당국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인옥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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