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가 자민당 정권을 종식하고도 여전히 구심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총리직을 내던지는 자민당을 비판했던 민주당 새 정권 역시 출범 8개월여만에 하토야마(鳩山) 총리가 물러났다. 2, 3년마다 반복되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지지율 조사에 춤추고 국민은 이런 무책임한 정치에 또다시 실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아소(麻生) 358일, 후쿠다(福田) 365일 아베(安倍) 366일, 그리고 2일 퇴임 표명한 하토야마(鳩山) 총리의 재임 기간이 260일이다. 최근 4년 동안 일본은 평균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총리가 계속 바뀌었다. 다른 나라 예를 들 것도 없이 일본 역대 총리 평균 재임 기간 2년 남짓과 비교해도 비정상이다.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불과 8개월여만에 신뢰가 땅에 떨어진 건 사실이다. 총리는 모친에게서 10억엔의 정치자금을 받고도 이를 정치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아 “탈세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민주당 실세인 오자와 간사장 역시 정치자금 허위기재 혐의로 측근 의원이 기소됐고 자신이 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沖繩)현외로 옮기겠다는 약속은 수도 없이 했지만 지난달 말 하토야마 정부의 결론은 오키나와내 이전이었다. 출범 당시 최고 75%였던 지지율이 17%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를 물러나게 만든 직접적인 요인은 이런 문제에 대한 책임 통감이라기보다 7월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 끼칠 영향이었다. 하토야마 총리의 이날 퇴임 연설에서 “책임”을 언급한 곳은 딱 한 군데다. 정치자금문제로 오자와(小澤) 간사장과 “함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대목이다. 전날 낮까지도 총리직 고수에 의욕을 표시했던 하토야마 총리는 결국 “선거를 위해 표지를 바꿔야 한다”는 당내 압력을 수용하고 말았다.
일본 정권이 단명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치가 언론 등의 지지율 조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일본 주요 언론은 매달 자체조사한 내각 지지율, 정당 지지율을 발표한다. 정당들은, 특히 집권 정당은 이 조사를 늘 주시한다. 특히 3년마다 한 차례 실시하는 참의원 선거, 중도 해산이 없을 경우 4년에 한번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지지율이 선거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시다 도오루(吉田徹) 홋카이도(北海道)대 준교수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은 물론 각국에서 내각지지율과 선거득표율의 상관관계가 깊어져 민의(지지율)가 곧 정권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일본은 고이즈미(小泉) 정권처럼 인기위주정책으로 지지율을 30, 40%대로 유지하지 않는 한 이런 경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 문제로 “일단 정권교체로 흡수된 것처럼 보인 정치ㆍ정당불신이 금세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그는 선거를 앞둔 이 같은 총리 퇴진이 다시 정치불신을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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