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베스이스라엘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99세. 루이스 부르주아 스튜디오의 웬디 윌리엄스 이사는 "부르주아가 지난달 29일 심장마비 증상으로 입원해 이틀 만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 '마망'으로 널리 알려진 부르주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평생 자전적 소재와 여성성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선보였다. 1911년 파리에서 양탄자 수선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불륜을 보고 자라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추상에 가까운 조각과 손바느질한 천으로 만든 조각, 판화, 드로잉, 설치 등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었지만 그의 작품에는 늘 어린 시절 받았던 내면의 상처가 깔려있다.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대표적이며,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소장된 '마망' 역시 새끼를 보호하며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한 작품이다. 그는 "나에게 예술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며 내가 경험한 상처, 증오, 연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르본대학에서 기하학을 전공하다 예술로 진로를 바꾼 부르주아는 에콜 드 보자르 등에서 공부했고, 화가 페르낭 레제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1938년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71세 때인 1982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회고전을 열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그는 최근까지도 뉴욕의 작업실에 은둔하면서 드로잉 작업에 몰두,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한국에서도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그의 전시가 열렸다. 지난 2~3월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꽃과 모성을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을 통해 오랜 상처의 치유와 용서를 암시하기도 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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