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축하 드려요. 합격하셨어요.' 그 말을 전하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쑥스러워서 놀이터로 나와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지 뭐예요."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3동 주민센터. 8급 공무원 조해영(35)씨의 제자 장옥순(61), 손미자(63), 김윤자(58)씨가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4년부터 등촌4종합복지관 한글교실에서 매주 월ㆍ화요일 저녁마다 조씨에게 기역 니은 디귿부터 배워 온 이들이다.
그들에게 조씨는 엄한 선생님이었나 보다. 한글을 웬만큼 깨친 나이 많은 제자들이 긴장을 풀자 아예 수학 사회 등 검정고시 과목을 가르치며 검정고시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던 거다. "그게 지난 해 말이었어요. 수업을 듣는 십여 중에 여섯 분이 응시했는데 그 중 세 분이 합격했어요." 그는 인터넷으로 검정고시 합격을 확인한 그 순간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벅차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5개월 동안 어르신들이 정말 열심히 하셨거든요."그도 열심히 했을 것이다.
손미자씨도 "이제 못 배운 한을 다 푼 것 같다"며 기뻐했다.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도 채 다 못 다니고 학교를 떠나야 했던 손씨다. 그는 "일하는 도중 합격 전화를 받고 속으로 많이 울었다"며 "내 이름, 내 주소도 못 썼는데 선생님한테 글을 배우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말했다. 일부 과목에 불합격해 합격증을 못 탄 나머지 3명도 "내년에 꼭 합격하겠다"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1996년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민원인 가운데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라 가족관계서나 주민등록등본 등 기본적인 서류 발급에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적잖이 만났다고 했다. "그 분들에게 제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복지관에서 한글교실 강사 모집 공보가 났어요."
조씨는 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한글 '가'를 설명하기 위해 가위 그림을 그려 넣고, '닭'을 제대로 쓰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에 받침 들어갈 자리를 빈 칸으로 만드는 식의 교재다. 집중력이 약한 어른들을 위해 '아리랑' 노래도 부르고, 준비한 유머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긴장을 유지시키기 위해 '똑바로 하세요'라고 꾸짖거나 '저 이제 그만 둘 거예요'라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조씨가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첫 해 5명이던 수강생도 두 배 넘게 늘었다.
조씨는 최근 컴퓨터 수업도 맡았다. 컴퓨터 전원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의 컴맹 탈출이 목표. 검정고시 합격자 세 명도 함께 듣는데, 이제 간단한 검색 정도는 해낼 만큼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한다. 조씨는 "어르신들이 컴퓨터 다음엔 영어도 배우고 싶다고들 하세요.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가 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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