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군에 간 아들의 편지를 받고 연락을 해왔다. 다 큰 자식이란 대개 제 필요한 일 없으면 부모와의 일상대화가 데면데면하기 마련. 정감 어린 군대편지는 그래서 더 반가웠을 터였다. 그런데 초보병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가득했던 이전 편지들과 달리 이번엔 분위기가 좀 무거웠단다. 조심스레 썼지만 북한의 전면전 태세 선포로 모든 휴가ㆍ면회가 금지되고, 복무기간도 대폭 연장된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병영에 돌아 영 심란한 모양이더라고 했다. 당치않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연락방법도 마땅치 않아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는 것이다.
■ 국방부가 보안상 이유로 특정인사들로만 제한해온 천안함 공개 및 정책설명회를 젊은 인터넷 활동가들에게까지 확대키로 했다. 검ㆍ경도 악의적 유언비어 유포자 엄단방침을 거듭 밝혔다. 결정적 증거와 합리적 설명에도 혼란이 정리되지 않고 있는 데다, 이젠 북한마저 유언비어를 직접 생산 확대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만큼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유언비어의 '악의성'을 판단한다는 게 대단히 모호하고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천안함 증거조작, 지나던 개가 웃는다' 따위를 합리적 의혹 제기 수준으로 볼 건 아니다.
■ 유언비어의 본성은 일찌감치 1950년대에 미 예일대의 호블랜드 등의 학자들에 의해 간파됐다.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별로 신뢰할 수 없는 정보원으로부터 다른 얘기를 들으면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보원의 신뢰성을 의심했던 사실은 잊어버리고 정작 그 색다른 내용만 기억하게 된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내용을 나중에는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잠재효과(Sleeper effect) 이론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바른 정보보다는 특이한 거짓정보를 더 잘,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 이게 유언비어의 진짜 위험이다. 최근 뿌려진 유인물 중에는 지난 정권의 규명작업에서 진보진영 조사위원도 인정한 KAL858편기 테러까지도 조작사례로 들어 천안함 사건 뒤집기에 이용하는 것도 있다. 아마 훗날 많은 이들 기억 속에 KAL기 조작설도 다시 부활할 것이다. 앞서 병영의 소문이야 누군가의 장난스런 과장에 따른 일과성 해프닝일 테지만, 실제 유언비어의 사회해체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장기적이다. 지식인인 체 하는 이들이 유언비어에 더 취약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배운 사람들부터 정신 차릴 일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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