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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청년 B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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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청년 B에게

입력
2010.06.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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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한창 푸른 나이인 너와 그보다 곱절을 산 내가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네가 대학생이 된 이후가 아니었을까.

미국산 수입 쇠고기 때문에 촛불이 일렁이던 무렵, 미국 경제가 살아야 우리 경제도 살고, 그러니 미국 말을 듣는 게 유리하다는 네 생각은 내게 놀라운 것이었다. 어릴 적, 너는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가 속옷에 소변을 지리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걸 빨아서 빨리 마르도록 요 밑에 깔았던 아이였어. 약한 이의 부끄러움을 그렇게 가려줄 줄 아는 네가, 약자들은 그저 따라야 한다는 듯 말하다니.

이따금 응급실 신세를 지고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야 하는 네 건강상태가 그런 체념을 익히게 한 거 아닐까 짐작하면서도, 당혹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다 만날 때면 우리의 대화가 결국 정치라는 지점을 향하고 만 건.

양심적 후보에 표 몰렸으면

어느 날, 너는 스스로 진단을 내렸지. 네가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한 신문만 너무 오랫동안 보아 온 것 같다고. 그 뒤, 네가 정반대 성향으로 알려진 신문도 보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기뻤단다. 너처럼 좋은 자질을 가진 청년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조금 안타까웠거든. 그건 네가 급진적 성향 쪽으로 치우쳤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는 것처럼, 양쪽을 다 접하고 균형을 잡아야 네가 더 너른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지방선거일. 똑같은 빛깔의 옷을 걸치고 죽 늘어서서 허리 숙이는 선거 운동원들, 신념에 찬 말이나 분홍빛 앞날을 약속하는 노래가 확성기를 통해 울리는 홍보차량, 펄럭이는 현수막, 그리고 아름다운 각오를 담은 후보의 문자 메시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그치겠구나. 애써 자기를 알리려는 그 노력이 버겁게 느껴졌던 건, 그 말들에서 진정성보다는 그저 '한 표'를 위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한다는 느낌이 짙어서였던 것 같다.

사실, 자기가 한 말을 다 지킨다는 것은 범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책이라는 게 혼자 펴는 게 아니니, 아무리 지키려 애써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말에 진심을 담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땐 최소한 그 사실을 기억하고 가책을 느낄 만큼은 양심적인 후보에게 표가 몰렸으면 좋겠구나.

"정치인들이 할 일은 근본적으로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내어 재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엠마우스의 창시자인 피에르 신부의 말이다. 전에 네게 이 말을 들려준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에 견준다면, 오늘 드러날 표의 향방은 결국 우리의 현재를 보여줄 것이다. 돈, 기회, 자유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을.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당선자가 자기의 공약을 실현하려 얼마나 애쓰는지,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강자를 위해 쓰는지 약자를 위해 쓰는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 잣대를 휘두르는 건 아닌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심는지 불안을 심는지.

공약 실행 잘 지켜보자

생각해 보렴, 몇만 원짜리 가전제품을 사도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1년 정도는 되잖니. 하물며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살림을 맡을 이들을 뽑아놓고,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민 후보이든 아니든 오늘의 결과에 승복하되, 그가 과연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지 바라보는 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 아니겠니. 나 살기에 바빠 주변 돌아볼 겨를 없는 게 우리의 삶이라지만, 결국 정치는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마는 것이니.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도 제대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테고.

이혜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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