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및 홍보활동에 모호한 지침으로 족쇄를 채우려다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31일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진흥센터에 따르면 지난 26일 4대강살리기추진본부(4대강본부)가 제작한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란 제목의 소책자가 전 직원에게 배포됐다. A씨는 "아침에 출근해보니 4대강 홍보물이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선관위가 (홍보물 배포를) 자제하라고 한 것으로 아는데 불법 관권선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책자는 24일 4대강본부가 1만5,000부를 제작해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4대강본부 관계자는 "그 책자는 원래 민원인을 상대로 4대강 사업을 설명하라고 중앙행정기관과 4대강 유역 지자체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만 지급된 업무지침용 설명서인데 배포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통상적인 업무활동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봐야 한다"는 애매한 답변만 내놓았다.
앞서 선관위는 4월 26일 국토해양부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에 '선거쟁점관련 활동방법 안내 요청문'을 발송해 정부의 4대강 홍보 인쇄물은 관련기관에 비치ㆍ게시용으로만 배포할 수 있다고 지침을 내렸다. 또 4대강 사업 반대 시민단체들도 단체기관지, 내부문서, 홈페이지, 보도자료 등으로만 의견을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의 기준이 모호하고 애매한 데다, 사안에 따라 선관위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법 집행의 형평성 및 공정성 시비로 이어지고 있다. 선관위는 정부의 4대강 홍보활동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30일 열린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회의 등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두고도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며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지난 12일 안명균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 환경단체 회원 3명은 경기도선관위로부터 4대강 관련 사진과 현수막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선관위는 이 같은 혼선에 대해 "4대강 사업을 주제로 한 홍보물의 배포, 집회 등이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동기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동기를 판단할 때 종합적인 고려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통상적인 업무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통상적인 활동의 판단 기준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23일에는 전남선거관리위원회가 4대강 사업 및 무상급식 찬반운동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반박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진보연대 등은 "같은 사안을 두고도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자유로운 토론을 가능케 장을 열어주지 않고, 실효성 없는 모호한 원칙만을 내세운다면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할 선관위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선거 전체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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