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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노스페이스' 오를수록 무너지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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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노스페이스' 오를수록 무너지는 희망

입력
2010.05.3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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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은 가장 오르기 힘든 암벽 중 하나다. 해발 3,970m로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들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악명은 높기만 하다. '죽음의 벽'이라 불릴 정도로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독일 영화 '노스페이스'는 아이거 북벽 초등을 놓고 유럽 국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30년대로 카메라를 돌린다. 젊은이의 파릇한 도전과 끈끈한 우정이 초반을 장식하지만 결국 등정의 희열보다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스크린을 점령하는 영화다.

1936년 독일은 베를린올림픽 개회를 앞두고 아이거 북벽 초등을 부추긴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것이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도 첫 등정의 영예를 안으려 한다.

독일군 산악병 토니(벤노 퓨어만)와 앤디(플로리안 루카스)는 꿈을 실현하려 한다. 국익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도전하려는 의식이 그들을 아이거 북벽으로 향하도록 한다.

영화는 고도에 따라 여러 계절을 품은 알프스처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아이거 북벽 밑에서 토니와 앤디가 등반을 준비하는 모습은 초여름 날씨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거친 눈보라와 살을 에는 강풍이고 그들의 운명도 겨울처럼 얼어붙는다.

악천후와 부상으로 고립무원의 궁지에 몰린 주인공들의 처지가 긴장감을 안긴다. 희망이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수직이나 다름 없는 아이거 북벽의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끝내 아이거 북벽이 통곡의 벽으로 새삼 확인되는 후반부 장면은 인간의 욕망과 우정, 인간애, 희생 등 복잡미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제목의 '페이스'는 90도에 가까운 직벽을 뜻하는 등반 용어다. 감독 필립 슈톨츨. 3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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