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연기자의 길에 뛰어들었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다 잠깐의 공백기가 찾아왔다. 버라이어티에 발을 들여놨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허리통증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의사가 있는지 묻자 "아뇨. 이제는 연기에만 전념하려고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지난달 KBS 단막극 '빨강사탕'에서 내밀한 사랑연기로 눈물을 자아내더니, SBS '커피하우스'에서는 톡톡 튀는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배우 박시연(31)을 만났다.
시원시원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보였다. 지난해 난생처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입 신고하는 신병 같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는 시청자의 뭇매를 맞고 힘들었을 법도 한데, 반년 만에 돌아온 그는 예능감이 아니라 연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지난달 15일, KBS에서 부활한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의 첫 회인 '빨강사탕'에서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 2005년 '마이걸'부터 지난해 '남자이야기'까지 작품 사이에 공백기가 전혀 없었던 그는 예능에서 닥친 위기를 연기 변신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마침 제대로 된 기회가 그를 찾아왔다. 평소 "꼭 한 번은 같이 해 보고 싶었던" 노희경 작가, 표민수 PD와 연달아 작품을 하게 된 것이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도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사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을 통해 팬이 됐다"는 노희경 작가의 '빨강사탕'과 솔선수범하는 '천사표 감독' 표민수 PD의 '커피하우스'는 그의 연기 변신에 도약대 역할을 했다.
지금껏 도시적이고 강한 여성을 연기해 오던 그는 '빨강사탕'에서 평범한 서점 직원으로 유부남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유희를 연기했다. 그리고 지난달 17일부터 시작한 SBS '커피하우스'에서는 또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 낸다. "밝고 자신감 있는 캐릭터는 처음이라 재미있어요. 일할 땐 할말 다하고 뒤끝은 없는 서은영은 제가 닮고 싶은 캐릭터기도 해요."
그는 원래 성격이 "남 앞에서 할말 다 못하고 혼자 삭이는 성격이지만 담아두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버라이어티 도전의 실패도 담아두지 않는 모양이다. "버라이어티 예능에 출연했던 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에요. 하지만 제 분야가 아닌 곳에 뛰어든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고, 이제는 잘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연기에 전념하려고요."
"처음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따라가려고 열심히만 했어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것처럼 했죠. 2008년 '달콤한 인생'때까지는 연기수업도 계속 받았어요." 2007년 영화 '구미호 가족'과 '사랑'으로 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연속으로 신인상을 받은 그는 허겁지겁 달려오면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특히 영화 '사랑'에서는 상대역인 주진모에게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연결해서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후 작품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매 작품이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하며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메릴 스트립처럼 변화무쌍하고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20대 초 부모님이 연기자가 되는 것을 반대해 혈혈단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드라마로 데뷔했던 것처럼, 그는 카멜레온 같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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