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에서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장인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의 인터뷰를 관심 깊게 읽었다. 공식 조사결과 발표 때 미처 하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값지다. 더러 궁금했던 점을 이해하는데도 도움된다.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이들은 이것도 보수언론의 장난으로 치부할 지 모르나,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석학의 경륜과 양심을 공경할 일이다. 남의 신문 기사라 자세히 옮기지 못해 아쉽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국회 천안함 특위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을 몰아세운 것에"그분들은 그렇게 말해야 하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심리학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고 말한 것이다. 정치적 입장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면 간편할 터인데, 엉뚱하게 심리학을 거론한 게 아리송하다.
인문적 지식인 꾸짖은 조사단장
인터뷰 끝부분에 답이 있다. 그는 과학적 조사결과에도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인문학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인문ㆍ사회 분야에 계신 분들도 자연과학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지식이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필요하면 공부하면 된다. 그러나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선 과학이 아니라 소양의 문제"라는 말도 했다. 이걸 앞에서는 점잖게 심리학적 문제라고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평생 과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학자답게 정치인들을 나무라는 데는 별로 관심 없는 듯하다. 그보다 직업이 무엇이든 지식인을 자처하며 과학적 근거 없는 온갖 이설(異說)을 떠들거나 공식 조사결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들을 찬찬하면서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그의 꾸지람에 당당하게 맞서 공개적으로 항변하고 논쟁할 지식인이 있을까.
인터뷰를 읽으며 그게 궁금했다. 굳이 남의 신문 기사에 기대어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숱하게 올라올 인터넷 댓글 따위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지겹도록 지적한 사이비 언론과 언론인들도 격에 맞지 않는다. 실체적 진실 찾기와 애초 거리 먼 파편적 의문을 한껏 과장해 대단한 의혹인양 보도하는 것을 언론 고유의 역할로 착각하는 이들도 자격이 없다.
내가 윤 교수의 논쟁 상대로 떠올린 지식인은 도올 김용옥이다. 윤 교수가 인터뷰에서 내심 그를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도올은 대중적 명망을 누린 대표적 인문학자이고, 천안함 조사결과를 0.0001%도 믿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그러니 더 없이 알맞은 논쟁 상대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불공정 게임일까. 하지만 나대던 자칭 전문가 가운데 지금 나설 이가 있을까. 북한 소행을 부인하고 갖가지 음모론을 떠드는 데 앞장선 이른바 '4인방'은 애초 합리적 논쟁을 할 자질이 없거나, 세 불리하자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난 정부의 대통령 안보비서관을 지낸 이도"북한 소행이라면 진작 잠수함 보복공격을 했어야 한다"고 몸 색깔을 바꿨다. 검찰 수사에 슬며시 보호색을 쓴 꼴로 비친다. 이런 참모를 거느렸던 이가 새삼 딱하다.
진정한 동정심 없는 좌우 극단론
이런 지식인들의 모습은 심리학을 넘어 정신병리학 차원에서 논할 만 하다. 도덕적 양심이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소시오패스(Sociopath)는 언뜻 사회 정의와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 영웅(X-altruist)과 닮은 면모를 보인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언행과 명성 추구, 후회를 모르는 신념 등이다. 다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 점이 다르다.
지나친 비난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양쪽의 극단론자들은 천안함 희생 병사나 북한 병사, 나아가 남북한 동포에게 진정한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음모론에 집착하는 진보와"사흘만 희생을 참으면 북한을 궤멸시킨다"고 떠드는 보수는 원수처럼 으르렁대지만 닮은 꼴 분단의 사생아들이다. 투철한 이념보다 개인적 이익을 좇는 무리에게 사회가 휘둘려서는 안된다. 그게 천안함 사태에서 가장 먼저 얻어야 할 교훈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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