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누군가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순직한 공군 조종사의 80대 부모가 28년간 꼬박 모은 유족연금 1억원을 순직조종사 유자녀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를 계기로 공군은 올 8월까지 자체 모금으로 총 3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공군은 기부문화를 확산시켜 재단 기금을 2014년까지 1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고(故) 박광수 중위는 임관 이듬해인 1982년 동해에서 해양훈련을 받다가 호흡곤란으로 순직했다.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마후라를 매고 막 F_5 전투기로 하늘을 누비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부친 박만춘(82) 옹은 “국가가 수년간의 훈련을 통해 아들을 당당한 전투기 조종사로 키워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국가의 부름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며 “아들을 떠나 보낸 비통함 못지 않게 국가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죄스런 마음을 갚기 위한” 박 옹의 보은이 시작됐다. 아들의 사망보상금 전액으로 컬러TV를 구입해 아들이 근무하던 16전투비행단에 기증했다. 매달 나오는 유족연금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라 국가의 돈”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인(80)도 묵묵히 남편의 뜻에 동의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인 박 옹은 “자식 또한 군인이 되기를 바랐던 소망은 꺾였지만 아들이 남긴 연금을 모아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올 3월 아들이 근무하던 부대에서 아들과 같은 기종을 몰던 조종사 3명이 산화했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박 옹은 “28년이 지났지만 내 아들이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신들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을 순직조종사 유가족들을 생각하니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기부를 결심한 것도 그 때였다고 한다.
박 옹은 31일 대전 계룡대 공군본부를 찾아 유족연금을 전달하면서 “이 돈이 장학재단의 밑거름으로 쓰여 어린 유자녀들이 긍지를 갖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해 주길 바랄 뿐”이라며 “더 늦기 전에 큰 짐을 덜어낸 것 같아 홀가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옹은 남은 생애 동안 지급받는 연금도 모아서 또 다시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은 “이번 기부는 조국 영공방위 임무수행 중 안타깝게 순직한 조종사 자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학재단 설립에 만전을 기해 소중하고 깊은 뜻을 기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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