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컨퍼런스가 3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틀 일정으로 개막했다. 참석한 각국 중앙은행 총재 및 임원들과 국제기구 인사, 경제학자 등은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기조연설을 담은 녹화영상을 보내 왔다. 정운찬 국무총리도 오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
버냉키 의장은 한은도 출구전략을 고려할 시기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영상연설에서 “중기적으로 한은도 확장적 통화정책으로부터 퇴장을 조율해야 한다”며 “성급한 출구전략의 위험과 너무 오랫동안 확장정책을 유지하는 것 중 더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출구 시점도 국가간에 다를 것”이라며 “중앙은행들이 각자의 판단으로 경제 상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금융개혁’을 중앙은행이 당면한 두 번째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이번 위기의 충격이 선진국에서 발생했지만 충격이 급격히 전파되고, 신흥국에서도 급격한 자본유출이 나타났다”면서 “위기 시 자본 유출입에 대한 대책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금융시스템을 강화하고 적절한 금융규제와 금융기관 자본 적정성 제고 등을 위해 G20 등을 통한 국제적 협력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
트리셰 총재는 국제 협력을 통한 새로운 ‘글로벌 지배구조’ 구축 움직임을 언급하며 특히 신흥국의 역할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 간 협력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더 가속화하면서 국제결제은행(BIS) 중앙은행 총재회의 및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각종 위원회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신흥국도 금융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기는 했지만 세계경제 힘의 원천으로서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글로벌 지배구조로의 통합 필요성이 부각된 것도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점에서 우리나라가 올해 의장국을 맡게 된 G20체제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트리셰 총재는 “국제사회가 선진국과 신흥시장국 모두로 구성된 G20 회의를 국제 경제협력의 최우선 협의체로 인식하고 있다”며 “올해 의장국인 한국이 G20 회의에서 성공적인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윌리엄 화이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개발검토위원회 의장
화이트 의장은 글로벌 위기 이후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는 자산가격과 관련한 신용 창출이 급증해 경제에 불균형이 생기고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패턴을 자주 봐 왔다”며 “선진국의 저금리 정책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를 예견한 학자로 유명한 화이트 의장은 “최근에는 중국 경제를 특히 걱정하고 있다”며 “지난 1년간 신용이 매우 팽창했고 투자도 급증해서 수요 측면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전망과 관련해서는 “그리스 등 몇몇 국가들은 적자가 매우 커 사실상 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 국가는 더는 유로지역에 남아있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화폐 가치는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답했다.
▦정운찬 총리
정운찬 총리는 오찬 축사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의 고교(경기고)ㆍ대학(서울대 상대) 동문으로 오랜 친구이기도 한 정 총리는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변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은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져 왔다”며 “그것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과 달리 중앙은행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이어 “시장은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으므로 한은이 정치뿐 아니라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면서 “중앙은행은 시장을 따라가기보다는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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