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상하이 동방명주의 1층 로비에는 세계 10대 경관이 전시돼 있다. 첫 번째는 만리장성이다. 그 다음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후지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이어 시드니 오페라 극장, 루브르 박물관, 베네치아 항구,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크렘린궁과 붉은 광장, 타워브리지가 차례로 전시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앞에 섰다. 그것은 뜻밖에도 2002년 월드컵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운집한 붉은악마의 응원 장면이다. 붉은 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 만 명이 전국 거리와 광장을 메우고 질서 있게 함성을 외치는 모습이 외국인의 눈에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경이로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규모 면에서 중국의 자금성이나 그랜드캐넌에 비해 경복궁과 설악산은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은 사람이 자산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의 자연경관이나 건축물보다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취한 것도, 정보통신 강국과 한류를 일궈낸 것도, 양궁 태권도 야구 골프 수영 빙상에서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것도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 장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높은 교육열과 유수한 문화가 있었기에 우리 겨레는 어려울 때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오래된 정신문화 유산과 유서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국가는 흥망의 깊은 수렁에 빠지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고 에서 설파했다.
한국의 중산층 기준이 4년제 대학을 나와 월 소득 400만 원이 넘고, 최소 30평 아파트에 살며, 2,000cc 이상 중형차를 타는 것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중산층의 기준이 유형적인 숫자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다. 반면 프랑스의 퐁피두 전 대통령은 ‘외국어 하나쯤 자유롭게 구사하며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추고, 스포츠를 즐기거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손님 대접할 별미 하나 정도는 만들 줄 알고, 사회 정의가 흔들릴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설 줄 알아야’ 중산층이라고 했다. 병인양요 때의 그 프랑스 장교가 다시 살아온다면 지금의 물질 우선주의 세태를 보고 뭐라고 할까?
다시 월드컵의 계절이다. 4년 전 독일 언론은 ‘응원은 한국이 우승감’이라고 칭찬했다. 훌리건은 난동을 부렸지만 붉은 악마는 휴지를 주웠다.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하면서 너그러움을 보였다. 단합된 힘과 질서, 문화의식을 보여줌으로 한국인의 이미지를 세계인의 가슴에 아로새겼다. 그런 ‘사람’ 때문에 세계인들은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도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줌으로 문화 민족답게, G20 의장국 국민답게 사람의 가치를 세계에 심어주자.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피겨스케이팅에서 우승함으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치가 6조 원이나 상승한 것처럼,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인의 단합된 모습과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다면 한국의 위상과 국가브랜드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내친 김에 국민의 여망을 담아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는 기회로도 삼자.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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