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꾼 절반이 게임 마니아… e스포츠로 미래 고객 잡아라
2009년11월11일, 세계 최대 e스포츠 축제로 불리는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9 그랜드 파이널'이 열린 중국 청두(成都) 뉴컨벤션센터. 당시 이 곳에는 세계 70여개국에서 총 600명이 넘는 선수들이 모여 5일간의 각본없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획득,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e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장 방문과 TV 시청 및 온라인 접속 등을 합쳐 최소 100만명 이상의 직간접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 행사에는 삼성전자 및 마이크로소프트(MS), 필립스 등을 비롯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관련 기업들의 후원도 줄을 이었다. 올해 9월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10번째 대회로 열릴 예정인 'WCG 2010' 대회 역시 일찌감치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e스포츠에 지구촌이 열광하고 있다. 언어와 문화, 인종 등의 장벽을 넘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e스포츠는 빠른 속도로 이용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e스포츠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IT 인프라 덕분에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에 따르면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광풍과 함께 증가하기 시작한 국내 온라인 게임 이용자 수는 전체 인터넷 활용 인구인 3,412만명(2006년5월 기준) 가운데 약 55%(1,600만명)에 이른다.
e스포츠 활성화 원동력은
가상의 온라인 환경에서 승부를 겨루는 e스포츠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국e스포츠협회 관계자는 "e스포츠는 초고속인터넷 환경이 좋은 우리나라에선 건전한 여가 문화를 즐기기 위한 좋은 분야"라며 "특히, 10~20대의 젊은 층을 목표 타깃으로 보고 있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국내 e스포츠 활성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간 20억~30억원의 유지 비용으로 미래의 잠재 고객 확보와 기업 및 브랜드 이미지 개선까지 가능한 e스포츠가 중장기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각 업체들의 마케팅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e스포츠를 대표하는 한국e스포츠협회는 지난해 10월 대한체육회로부터 정식 인정단체로 승인 받았다.
세계 최초로 국제 e스포츠 국제기구인 '국제 e스포츠 연맹'을 창설(2008년8월)한 우리나라는 12개(실업팀 11개ㆍ공군팀 1개)팀이 참여하는 세계 유일의 게임 프로리그를 운영 중이며 케이블과 인터넷 포털,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다양한 미디어 채널에서 전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다. 이 같은 저변 확대 노력에 힘입어 삼성경제연구소는 2004년 267억원에 머물렀던 국내 e스포츠 시장 규모가 2005년 395억원에서 2007년 774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1,20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e스포츠가 디지털 세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 코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SKT 'T1', 창단 6년간 최다 우승…명문구단 도약
SK텔레콤이 2004년 창단한 'T1'은 국내 e스포츠 업계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다. e스포츠의 황제로 잘 알려진 임요환 선수를 주축으로 꾸려진 T1은 창단 6년 동안 최다 우승(2004 투산배 팀리그, 2005 스카이 프로리그 전ㆍ후기 및 그랜드 파이널, 2006 스카이 프로리그 전기, 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 연간 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T1은 또 2009년12월에 열린 제4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에선 '올해의 프로게임단상'을 수상했으며 이 팀 소속의 김택용 선수는 같은 해 11월 개최된 'WCG 2009'에 출전,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현재는 박용훈 감독을 주축으로 3명의 코치와 12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SK텔레콤측은 연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지면 등을 통한 노출 등으로 연간 150억원 이상의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자체 평가다. T1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스포츠용품 업체인 아디다스와 유니폼 스폰서(연간 2억원) 계약을 맺고 있다. SK텔레콤은 향후,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T1을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적극 활용하면서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과 이벤트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KT '롤스터', 국내 최초 프로 게임단 창단…e스포츠 개척
올해로 창단 11년째를 맞이한 KT '롤스터'는 국내 최초 프로 게임단으로 출범한 e스포츠의 개척자로 통한다. 당시 최고 선수로 군림했던 홍진호, 박정석, 강민 선수 등을 영입해 운영하면서 e스포츠 업계의 이적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특히, 국내에선 처음으로 서포터즈 운영단을 운영, 대규모 응원전 및 온오프라인 팬미팅 등을 진행하며 e스포츠 마케팅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프로그램은 후발 주자로 창설된 다른 게임단의 마케팅 모범 사례로 주목 받기도 했다.
롤스터는 현재, 이지훈 감독을 중심으로 3명의 코치와 14명의 선수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100억원 가량의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KT측은 롤스터를 자사의 다양한 유무선 상품 홍보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각종 프로리그 결승전 및 팬 미팅 행사에 KT 우수 고객을 초청하는 한편, 롤스터를 그룹사인 KTH와 KT테크, KT텔레캅 등의 공동마케팅까지 활용 폭을 넓혀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KT는 또 성적과 결과가 아닌 성장 및 과정 중심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통한 고객 감동 마케팅에도 롤스터를 등장시킬 계획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 국내 e스포츠 활성화 방안은
국내 e스포츠가 신세대들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e스포츠의 재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아직까지도 지나치게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e스포츠 대회는 스타크래프트를 위주로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이는 그 만큼 다른 e스포츠 종목 연구ㆍ개발과 흥행에 실패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산 게임을 소재로 한 e스포츠 리그 활성화와 해외 순회 경기 등을 통한 국산 게임의 해외 수출 지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e스포츠 전문가가 신작 기획단계에서부터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와 협력해 개발에 참여하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한다면 높은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수 정예화' 전략으로 e스포츠의 권위와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프로 게이머의 자격 기준을 강화해 양질의 선수 양성을 유도한다면 국내 e스포츠 수준은 그 만큼 향상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규정을 갖춘 아마추어 정규리그도 지금 보다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제안이다. 프로 스포츠인 만큼, 스타성을 갖춘 선수 발굴 육성도 필요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해외의 우수 게이머를 국내 리그에 적극 영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흥행성 제고 및 고정 팬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지역 연고제'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한 아이디어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지역적으로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경기 참여 방식을 여러 나라로 확대하는 것도 국내 e스포츠 활성화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와 지리적 근접성이 높고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 등은 우선 고려 대상이다. 1억5,000만명에 달하는 게임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인텔을 비롯한 많은 다국적 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은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e스포츠 프로 게임단 관계자는 "간간히 게임 중독과 같은 부작용과 연관돼 터져 나오는 사고로, e스포츠에 대한 인식 개선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관계 당국과 게임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e스포츠에 대한 인식 개선 방안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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