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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34> 장유 "시는 천기(天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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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34> 장유 "시는 천기(天機)이다"

입력
2010.05.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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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천기(天機)이다. 소리로 울리고 색깔과 윤기(色澤)로 빛나니 그 청탁(淸濁)과 아속(雅俗)이 자연에서 나온다. 소리와 색깔과 윤기는 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천기의 오묘함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 …… 왜 그런가? 참됨이 없기 때문이다. '참'이란 무엇인가? 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장유;<석주집 서(石洲集 序),《국역석주집)》권 1, 참조)< p>

계곡(谿谷) 장유(1587-1638)는 이른바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하여 월사 이정구, 상촌 신흠, 택당 이식과 함께 조선조 한문 4대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리고 임병양란 이후 양명학을 받아들여 허학(虛學)을 비판하고 '참'을 회복하자는 주장과 실천을 편 실심(實心) 실학자로 이름났다. 조선 후기 비평가의 한 사람으로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양란 뒷시대의 허학을 비판하면서, 이런 풍조와 달리 '참'에 가까웠던 사람으로 서경덕과 함께 장유를 꼽은 바 있다. 서경덕이 주자학의 체계를 기일원론으로 지양하여 안에서부터 개혁하고자 했다면, 장유는 불교나 양명학과 같은 주자학 밖의 사상에서 대안을 찾으려 한 사람이었다.

장유는 말하기를, 중국에는 학술이 여러 갈래여서 문(文)이나 길은 하나가 아닌데, 우리나라는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정자(程子) 주자(朱子)만을 칭송하고 다른 학문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그는 이것이 참됨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이란 무엇인가? 천기를 일컫는 것이다. 그는 이런 꽉 막힌 구속 속에서는 실심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비판하고, 여러 학문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학문이 열매 맺을 수 있다고 했고, 스스로도 애썼다. 열매는 실(實)이며, 가득 참이며, 참됨(眞)이다.

위에 보인 <천기론> 은 이런 그의 사상의 일단이다. 그는 특히 문장으로 뛰어나서, 당대의 명사인 송시열과 김창협 등이 모두 장유의 문장을 조선 제일로 평했다. 그런 장유가 스스로 시는 잘 못한다고 겸사하면서도, 당대의 허학을 비판한 것처럼 또한 시를 천기로 평했다. 천기는 하늘의 기운이며, 자연의 기운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런 천기를 타고난 시라야 참 시라는 것이며, 이런 노래라야 자연을 움직이고 귀신을 통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의 말만으로 시를 볼 뿐, 시인의 사람됨으로 시를 볼 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조선조 최대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조선 건국의 이념이었던 주자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를 천기에서 찾은 사람들에는 허균과 김창협 등이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본바탕을 천리, 천기로, 그 작용을 정(情)으로 본 것은 장자(莊子)나 양명학에 가까웠다.

"시는 천기다"라고 하는 말은 시의 본바탕이 '참'임을 뜻한다. 장유를 "실심에 바탕하고 실학에 법(法)하였다"(朴瀰, 《계곡집(谿谷集)》序)고 한 평가도 우리 학문의 새 전통으로 '실심 실학'이 참 학문으로 싹트던 변화를 웅변으로 말해 준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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