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 7, 8월 3개월 동안 '밀폐공간 주의보'를 발령했다. 다급한 주의보는 맨홀 정화조 등은 물론 위험한 가스가 쌓여있는 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사전점검을 철저히 하고 보호장비를 잘 챙기라는 것이다. 볏섬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음을 경고했다. 이를 무시한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숱하고, 40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나 15명이 희생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처럼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예 계절을 가리지도 않는다. 여름철 일상에 대한 또 하나의 주의보는 간과하기 쉬운 '산소부족'에 대한 것이다.
■ 밀폐공간에 국화를 가득히 들여놓고 잠을 자면 질식사 위험이 있다. 백합도 그렇다고 하며, 실제 일본에서 개업식 축하 난초를 잔뜩 모아놓은 밀실에서 잠을 잔 청년이 아침에 변사체로 발견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식물은 낮엔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놓지만, 밤엔 그들도 우리처럼 산소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호흡을 한다. 국화나 백합의 향기에 독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공기 중에 20%정도 있는 산소이지만 15% 정도만 되면 호흡곤란과 두통 구토가 생기고,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전신마비와 의식불명으로 이어진다.
■ 연탄가스 번개탄 중독만이 아니다. 승용차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들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집안 욕실에서 가스순간온수기를 틀고 샤워를 하던 여고생이 질식사한 사건도 있었다. 해수욕장 텐트 안에 가스랜턴을 켜놓고 잠자던 50대 부부가 함께 사망한 일도 있었다. 선풍기를 얼굴 쪽으로 켜놓고 깊이 잠드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운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밀폐공간을 만들고 산소부족 요인을 방치했기 때문이었다. 신체마비가 먼저 오므로 '일어나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사망에 이른다는 것이 의사들의 설명이다.
■ "지금 냉방 중이오니 주변의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철 심심찮게 듣게 되는 사무실 방송이다. 오후가 되면 약간 어지럽고 피로하더니 며칠 지나면 두통과 후두염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생긴다. 밀폐공간-산소부족으로 인한 '빌딩증후군'이다. 옥외나 야외라고 안전할까. 지구 대기권 역시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밀폐공간에 불과할 터이다. 산소가 생산될 요인은 점점 줄어들고, 화석연료로 인한 탄산가스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래선 안 되는데'하는 의식은 여전히 있는데 결국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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