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대학졸업식 연설이 화제가 됐다. 화폐나 금융,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할 줄 알았던 이 중앙은행 총재가 돈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미 남동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식에서 버냉키 의장은 돈이 있어야 윤택한 삶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소득과 행복은 비례 않아
"생활에 필수적인 경제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는 부유한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소득이 낮은 나라 국민보다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게 된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 비율은 40년 전보다 높지 않다. 미국인의 행복도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4분의 1인 코스타리카와 비슷한 수준이다."
버냉키 의장은 소득이 늘어난다고 국민의 행복이 같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터린의 '이스터린 역설'을 소개하면서 가족과 친구, 지역과 사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때로 자신에게 피해가 있더라도 올바른 일을 찾아서 하라고 조언했다.
이런 주관적인 행복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국가 차원에서 천명해 유명한 나라가 부탄이다. 부탄은 "물질적인 풍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족도 함께 발전시키자"며 1970년 대에 국민총행복도(GNH)라는 지수를 도입했다. 그래서 부탄 국민이 정말 행복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굳이 부탄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소득과 국민의 행복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조사는 여럿 있다.
미 미시간대 세계가치관조사(WVS) 팀이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 97개국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최상위 그룹은 1위 덴마크에 이어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 남미 콜롬비아, 북유럽의 아이슬란드와 북아일랜드가 차지했다. 아시아 주요국 중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이 43위, 중국이 54위, 한국은 62위에 불과했다.
영국 레스터대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178개국의 평균수명, 국민총생산, 교육 등 100개 항목을 종합해 2006년 만든 '세계행복지도'의 상위 그룹에는 바하마 부탄 브루나이가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조사에서 중국은 82위, 일본은 90위, 한국은 102위였다.
무조건 성장부터 하고 보자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경제정책의 성패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려는 나라들이 최근 눈에 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부는 2008년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모아 '행복도 측정에 관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건강 교육 개인활동 환경 등의 객관적인 지표와 함께 국민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감도 경제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로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성장보다 행복을 정책 목표로
일본 정부도 지난해 말 신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행복도를 나타내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 그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사회에서는 행복도를 나타내는 세계 공통지표를 만들자고 제안해 2년 동안 검토해 나가자는 합의도 이끌어냈다. 경제성장은 수단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느냐가 국가경영의 목표라는 데 새삼 눈뜨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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