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너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어.
잘 생긴 외모 외에도 '축구쟁이'의 이미지가 너에게서 풍겼어. '이 녀석 참 축구를 잘 차겠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지. 내 예감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어. 너는 고집이 대단했지. 지지 않으려는 승부근성을 단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선수로서 장점이 많았던 네가 FC서울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것을 봤을 때 참 마음이 아팠다. 속상해 하던 너에게 '준비만 하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올 거다. 항상 몸을 만들고 있어라'고 격려했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너는 선배라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 이러한 격려에 고맙다고 거듭 표현해 나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경기를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뒤 다시 한번 놀랬어.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너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봤는데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요'라고 답했었지. 그 때는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
지난 24일 일본전에서 (곽)태휘가 뛰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어. 뉴질랜드에서도 생방송으로 중계한다고 했는데 하지 않아서 못내 아쉬웠다. 비록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네가 잘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월드컵 예선 경기를 치르는 것을 쭉 봐왔잖아.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미숙했는데 요즘 경기를 보면 노련미가 많이 묻어 나더라. 불안했던 장면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아.
지금처럼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게 너무 보기 좋다. 남아공월드컵에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으니까 하던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공격수를 마크해야 하는데 너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조금만 더 집중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형이 항상 하는 말 기억하지.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는 거. 준비가 돼 있으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드러나게 돼 있어. 그러니 남들 쉴 때 발목 운동이라도 한다면 그 결과가 경기에서 나타날 거야. 월드컵에서의 경험은 앞으로 선수생활에 큰 도움이 되니 승패를 떠나 아무쪼록 많이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월드컵 이후에는 더욱 발전한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둘이 맥주 한잔 시원하게 마신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결혼식 못 간 것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 꼭 만나서 그 동안 못다했던 이야기를 나눠보자. 파이팅이다.
■ 곽태휘와 이기형의 인연
FC서울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난 곽태휘(29ㆍ교토)와 '캐논슈터'이기형(36ㆍ오클랜드 시티 플레잉코치)은 7살 차이의 벽을 허물고 친해졌다. 둘은 2005년 FC 서울에 둥지를 틀면서 인연을 쌓게 됐다.
촉망 받는 유망주로 서울에 입단했던 곽태휘는 2005년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수비로 전향했던 이기형 역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들으며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기형은 너무나 성실하고 재능이 있어 보였던 곽태휘에게 위로의 말을 자주 건넸다. 그러다 보니 둘 다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속 마음이 통해 가까워졌다.
승부근성이 강했던 둘은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경기장에 남아 추가 훈련을 함께 하며 의지를 다졌다. 이기형은 "둘이 볼을 주고 받는 게임을 자주했는데 서로 지지 않으려고 승부욕을 불태워 1,2시간은 그냥 훌쩍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팀 숙소 밖에서도 자주 만난 둘은 서로의 마음까지 편하게 터놓을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곽태휘는 2008년 2월 투르크메니스탄과 월드컵 3차 예선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은 뒤 호텔로 돌아와 가장 먼저 이기형에게 전화를 걸어 "형, 나 골 넣었어요"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24일 일본전을 앞두고도 곽태휘는 이기형과 통화하면서 힘을 얻었다. 이기형 역시 휴대폰에 곽태휘의 사진이 저장돼 있을 정도로 둘은 돈독한 선후배로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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