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지음ㆍ이창신 옮김/김영사 발행ㆍ404쪽ㆍ1만5,000원
책을 읽기 전, 먼저 안전벨트부터 바짝 매는 게 좋겠다. 물론 허리가 아니라 지적 사고에다. 롤러코스터 같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각종 사고 실험과 질문들이 당신의 신념의 뿌리를 쉴새없이 추궁하며 흔들어댈 테니까.
"내가 죽든 말든, 내 자유다"라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을 향해, '합의된 식인(食人)'이란 실화를 예로 들며 "자기 몸을 음식물로 바치는 것도 정당하냐"는 섬뜩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예사다. '당신이 어떤 견해를 가졌든, 당신을 멋지게 유인해… 기존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는 책 뒷면에 실린 추천사가 의례적인 허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식 질문으로 독자를 '논쟁의 정글'로 이끄는 저자는 마이클 샌델(57) 하버드대 교수. 는 그가 하버드대에서 20여년 간 강의한 '정의(justice)' 수업을 토대로 지난해 출간한 책이다. 원제는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신(神)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무엇이 올바르냐'는 질문만큼 포괄적이고 어려운 질문도 없다. 시장에 대한 규제, 누진세 적용 등 경제학의 오랜 논쟁부터 낙태, 동성혼, 소수집단 우대정책 등 모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깔려 있는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슈들에 대해, 이 책은 그 뿌리를 파고든다. 결국 그 바탕에 놓인 근현대의 핵심 사상들과 한판 씨름판을 벌이는 셈인데, 주요 대결 상대는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로버트 노직이나 밀턴 프리드먼 등의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의 자장 내에서도 보편적 인권을 정립한 임마누엘 칸트, 평등을 옹호한 존 롤스 등이다.
책 첫머리부터 등장하는 난감한 질문.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 기관사인데, 철로에 다섯 명의 인부가 있고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한 명 있다면?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리겠다는 선택은 정당해 보인다. 질문을 바꿔 당신이 이탈한 전차를 구경하는 목격자인데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옆에서 함께 구경하는 덩치 큰 사람을 선로로 밀어 전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어떨까? 똑 같이 한 명을 희생해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인데, 두 번째 상황은 어딘지 꺼림칙하다.
저자의 이 질문은 실은 정당성의 근거를 '쾌락과 고통의 비교량'에서 찾는 공리주의를 겨냥한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서도 한 명과 다섯 명의 생명을 비교하는 논리가 가능하느냐는 추궁이다. 공리주의적 사고는 현대 기업과 정부에서 비용ㆍ편익 분석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고, 심지어 인간 수명도 돈으로 환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담배가 노인을 조기에 사망시켜 정부의 예산절감 효과(연간 1억 4,000만 달러의 수익)가 크다는 어이없는 분석을 내놓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공리주의자들의 사고에서 빠져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 자유인 것이다.
두번째 상대는 자유지상주의자. 예컨대 마이클 조던에게 누진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자유지상주의는 '노동 결과에 대한 강탈'이라며 펄쩍 뛴다. 자유시장 옹호론의 핵심을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자기 소유'와 '선택의 자유'로 파악하는 저자가 이들에게 던지는 까다로운 질문은'국방의 의무'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부자는 강제 징집되는 대신 시장에서 대리인을 구해도 상관없고, 전쟁도 '민영화'로 귀결된다. 저자는 또 장기매매, 안락사, 대리모 등의 이슈를 들이밀면서 이들 사안에 내재해 있는 보수적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모순점을 신랄하게 파고든다.
다음 라운드 대상은 칸트와 롤스인데, 저자는 이들에겐 다소 조심스럽다. 칸트는 이성이 내리는 '정언명령'에서, 롤스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뤄지는 '가언합의'를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정의의 객관적 근거를 찾는다는 점에서 근현대 정치철학의 정점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 대목에서 "좋은 삶(미덕)이 무엇이냐"는, 자유주의가 포기한 질문을 던지며 자유주의의 선을 넘는다. '좋은 삶'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단지 좋은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전통이다.
험난한 논쟁의 여정 뒤에 도달하는 목적지는 다소 낯설고 당혹스럽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까지 끌어들이며, 주관적인 가치 문제를 정의론에 끼워 넣는다. 낙태 문제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가치판단은 보류한 채 단지 '선택의 자유'란 측면에서 지지하지만, 태아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이냐는 가치판단이 이미 전제돼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즉 올바름에 대한 모든 판단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미덕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
이런 논의에서 보듯 저자는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힌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다."(336쪽) 저자의 결론이 불편하더라?이 책의 매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논리적 공박의 여행 과정에서 독자는 이미 저자를 반격할 수 있는 또 다른 논리를 훈련받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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