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블레즈 지음ㆍ이선주 옮김 / 민음사 발행ㆍ376쪽ㆍ1만8,000원
1876년 7월 어느날 아일랜드를 여행하던 스코틀랜드 출신 캐나다 토목기술자 샌포드 플레밍(1827~1915)은 밴도란이라는 시골역에서 기차를 놓친다. 기차 도착시간을 5시 35분으로 알고 있었던 플레밍은 20분이나 일찍 나왔지만, 기차가 이미 12시간 전에 역을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루를 0시에서 24시까지로 표기하는 표준시 제도가 사용되지 않았던 당시, 교통편 운행시간표에는 오전과 오후가 구분돼 있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갈 배까지 놓치는 낭패를 본 플레밍은 '지역'의 시간이 아닌 '지상'의 시간을 표시하는 표준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플레밍이 살았던 19세기는 철도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때다. 하지만 기차 운행시각은 각 철도회사가 정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은 오롯이 승객들의 몫이었다. 철도사고 역시 다반사였다. 예컨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철도회사들은 필라델피아 시각을 기준으로, 뉴욕주의 철도회사들은 뉴욕의 시각을 시간표의 기준으로 삼았다.
1883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철도연합시간총회에서 간선철도 경영자들이 시간표준을 4개로 줄이는 데 합의할 때까지 북미 지역에서는 무려 50개가 넘는 철도시간표가 쓰였을 정도다. "미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차 잡기"라고 했던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당시의 혼란상을 상징한다.
시간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발생하는 혼란은 국내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국적이 다른 배들은 바다 위에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항해시간의 기준인 자오선(子午線)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작가 클라크 블레즈가 쓴 은 세계 표준시 제정의 기초가 된 탁월한 이론을 만든 샌포드 플레밍의 삶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의 표준시 제정운동이 야기한 논쟁들을 되짚어보고, 표준시 제정이 의미하는 문화적ㆍ철학적 함의를 설명한다.
세계 표준시는 1884년 10월 세계 25개 국의 외교관, 과학자들이 워싱턴 DC에서 연 본초자오선회의에서 제정됐다. 회의를 뜨겁게 한 것은 과학적 논쟁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 회의가 오직 세계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을 파리로 할 것이냐 런던으로 할 것이냐를 둘러싼 프랑스와 영국의 자존심 대결의 장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논쟁의 승자는 당시 상업선박의 72%가 런던 그리니치 기준 항도를 쓰고 있다고 주장한 영국. 그러나 저자는 정작 이 회의에서 누가 이겼느냐 혹은 이 회의가 무슨 역사적 의의가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철저하게 과학적 입장에서 진행됐어야 할 회의가 정치ㆍ외교적 힘겨루기로 전락했다고 본다.
프랑스의 기준에 따라 정해진 표준도량(미터법)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기준에 근거한 표준시 제정의 역사가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근대의 척도들은 하나같이 '세계'가 아닌 철저한 '서구'의 편의에 따라 정해졌으며, 따라서 '보편성'이라는 개념의 정당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처럼 표준시 제정이라는 사건이 단지 제도적 혁신을 상징할 뿐 아니라 서구적 '이성'의 비서구 문화권에 대한 '억압'을 함축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짚고 있는 내용이나, 표준시 제정은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도전을 낳았고 그것이 '파편'으로서의 시간을 주목한 모더니즘 예술사조의 토양이 됐다는 지적도 음미할 만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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