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수 지음 /실천문학사 발행·전 2권·각 권 1만1,000원
소설가 강동수(49)씨가 등단 16년 만에 내는 첫 장편으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팩션이다.
1905년 초부터 을사조약이 체결된 그해 11월까지를 다룬 이 소설은 두 가지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먼저 육종학자 우장춘의 아버지인 조선시대 개화파 군인 우범선(1857~1903)이 1895년 휘하 장병들을 이끌고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 것. 그리고 고종이 대한제국 시절 국내외에 요원을 둔 첩보 기구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를 설치한 것.
소재의 승리랄까, 10여 년 전 관련 사료가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긴 했지만 일반인에겐 여전히 낯선 제국익문사를 전면에 내세운 덕에 이 소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느 팩션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서사를 선보이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이인경을 비롯한 제국익문사 요원들이 근황(勤皇)의 사명 아래 일본과 중국 상하이에서 펼치는 공작을 이야기의 외피로 삼아 첩보소설에 방불하는 흥미를 자아낸다.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갖고 쇠망해가는 국가를 일으키려 하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결. 국모를 시해한 국사범이라는 비난 속에 조선인 자객에 의해 죽음을 맞았던 우범선은 작가 강씨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개화파의 화신으로 부활한다. 군민동치(君民同治ㆍ입헌군주제)를 넘어 왕정을 완전히 부정하는 합중공화(合衆共和ㆍ공화제)의 나라를 조선에 세우기 위해 그는 갑신정변 실패 이후 일본에 망명한 박영효 세력은 물론, 일본 사회주의자, 조선의 비적(匪賊) 등을 폭넓게 규합한다. "적의 칼을 빌려 적을 치기 위해 우선은 적에게 집을 내주겠다, 아니 스스로 적을 집 안으로 맞아들이겠다."(2권 183쪽)
조선 황실에서 빼돌린 비자금으로 무장 봉기를 준비하는 우범선 일파를, 장동화가 이끄는 제국익문사 요원들이 끈질기게 뒤쫓는다. 장동화는 한때 우범선, 이인경의 부친과 뜻을 같이하는 개화파였지만 갑신정변 실패 이후 근황파로 돌아선 인물. 생사의 기로에서 맞닥뜨린 옛 동지 우범선에게 장동화는 말한다.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조선의 국체를 보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테지. 그건 나도 모르겠네. 자네가 실패했던 것처럼 아마 나도 실패하겠지. 하지만… 자네는 최악의 길을 선택했네."(2권 280쪽)
각자의 자리에서 구국을 위해 헌신한 두 사람의 희생도 헛되이,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간다. 아버지의 옛 동지였던 그들의 죽음 앞에서 인경은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문제였기에 우리는 결국 망국의 백성이 되었는가."(314쪽)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올해, 작가가 역사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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