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 42년(1777년) 8월. 청나라 황제가 내각에 유지(諭旨)를 내린다. "왕조가 일어난 발해 건주의 연혁과 처음 만주의 기초를 놓은 것, 그리고 고금의 지명이 같거나 다른 것은 마땅히 자세히 고찰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만세에 이르도록 볼 수 있게 하라."유지를 받든 대학사인 아계(阿桂)와 우민중(于敏中), 시랑인 화신(和珅)과 동고(董誥)가 편찬을 맡을 인원과 예산 등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해 황제에게 보고했다. 건륭제는 기꺼이 승낙하면서 직접 책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欽定 滿洲源流考)로 하도록 하라."
■ 는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부족과 국가의 역사와 지리, 풍속과 물산 등을 분류하여 20권으로 정리했다. 특히 역대 중국 왕조가 폄하하거나 왜곡한 만주와 한반도에 관련된 기존 기록들을 자세한 고증을 통해 하나하나 반박하고, 바로잡았다. 이 책의 편찬 목적은 책 머리에 건륭이 "천하를 얻는 데 있어서 누가 우리 왕조처럼 정정당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듯 자신들의 선조인 만주족의 뿌리를 캠으로써 청(淸)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만주는 변방이 아니며, 만주족이야말로 한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편찬의 목적이 무엇이든, 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사료이다. 고구려와 발해를 세운 주요 부족이 만주족(말갈과 여진족)이고 그들이 금과 청을 세웠기 때문에 결국 여진족도 발해와 고구려의 후예라는 지나친 자기 중심적인 해석도 있다. 그러나 동방은 야만, 변방이 아니라 "인을 중히 여기고 도의가 있으며 인품이 후하고 소박한 곳"임을 사료를 바탕으로 규정한 것이나, 신라와 백제의 강역(영토)이 지린성(吉林省)과 랴오닝성(遼寧省)에까지 미쳤다는 내용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할 근거가 될 수 있다.
■ 최근 이 책을 완역한 사람은 학자가 아닌 감사원의 남주성 과장이다. 육사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그는 인터넷 역사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번역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2007년 도전에 나섰다. 2년 동안 주말과 휴일을 쏟아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번역을 마쳤고, 주석을 달고 문맥 잡고 지리적 고증하는 데 1년을 더 보냈다. 출판도 쉽지 않아 친구 도움으로 겨우 500부만 찍었다. 인세는 언감생심이고,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자료로 잘 활용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돈 안되고, 힘만 들고, 평가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아예 번역은 외면하는 학자들이여, 부끄러운 줄 알라.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