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대학생 바둑동호인들이 모처럼 만에 한 자리에 모여 수담을 즐겼다.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지난 주말(22일) 열린 제1회 대학바둑단체전에는 전국 20개 대학에서 120여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열전을 벌였다.
최강부, 일반부, 18급부 등 3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 대회 결과 명지대, 한국외대, 연합2팀(이화여대. 한양대, 숭실대)이 각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 규모의 대학생 바둑대회가 열린 건 무척 오랜 만이다. 한때 대학바둑은 한국바둑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최고의 자양분이었다. 대학마다 바둑동아리가 활발히 활동하며 아마강자들을 양산했고, 이들이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 자연히 각 기업마다 직장기우회가 활성화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캠퍼스에서 바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임이나 다른 놀거리가 많아지고 취업이 대학 생활의 지상목표가 되면서 바둑이 서서히 대학생 놀이문화의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각 대학에서 바둑동아리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기력 수준이 낮아 활발한 활동을 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유일하게 전국 규모 대학생 바둑대회의 전통을 지켜 오던 대학패왕전마저 2004년 제23회 대회를 끝으로 사라지는 불행한 사태를 맞기도 했다. 현재 구성돼 있는 대학바둑연맹도 이름과는 달리 재학생이 아니라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학바둑이 암흑기를 맞은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보다 못한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이 올해부터 대학바둑을 다시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대학바둑이 살아야 직장바둑이 살고 나아가 아마바둑 전체가 건강해진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올 들어 프로기사회가 군부대에 대한 보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전국 대학의 바둑동아리 활동 실태를 점검하고 각 대학에 20~30대 젊은 프로기사를 사범으로 위촉해 매달 한 차례 이상 찾아가 강의를 하게 하는 등 지원활동을 강화했다. 이번 대회 역시 프로기사회가 주최했고 각 대학 바둑동아리 재학생 임원들이 대회 진행을 맡았다. 국내 프로기사들이 자발적으로 대학바둑 부흥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은 한국바둑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대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최강부 뿐 아니라 중급자를 위한 일반부와 완전 초보자를 대상으로 한 18급부까지 마련했다는 것.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데 그치지 않고 전국의 대학생 바둑동호인 모두가 기력에 관계 없이 한 자리에 모여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는 취지다.
올해 처음 바둑동아리에 들어가 바둑을 배워 18급부에 출전했다는 김명도(상명대 2년)씨는 "이제 겨우 축과 장문을 아는 정도로 바둑 실력은 보잘것없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타 대학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하루를 즐길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대회 진행을 맡은 대학바둑연맹의 재학생 회장 서재정(고려대)씨는 "대학의 바둑동아리 활동이 한동안 크게 침체됐었으나 최근 다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학교마다 자체 대회는 물론 인근 학교와의 교류전, 다면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학생들에게 바둑이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지 알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로기사회 보급팀장으로 이번 대회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올해 프로기사회의 3대 보급 목표가 군부대와 대학 및 지역기우회다.
올 초부터 박승철 온소진 김원 배윤진 김효정 김민희 이하진 이다혜 김선미 이현욱 강지성 진동규 류민형 등 젊은 프로기사 10여명이 수도권 25개 대학에 2주에 한번씩 강의를 나가고 있다"며 "오늘 첫 신고식을 치른 대학단체전을 올해 안에 4번 정도 더 개최할 예정이고 대학바둑10강전 등 그밖에 다양한 행사를 기획 중"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박영철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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