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권모(67)씨는 경기 안산의 한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 5만원을 주고 서류를 꾸몄다. 'K건설 한모(50) 대표 등 9명을 해임하고 자신과 장모(58)씨 등 4명이 각각 대표이사와 이사, 감사가 됐다'는 내용의 임시주총 의사록이었다. 또 회사 주식 26만2,000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거짓서류도 작성했다. 권씨 일행은 이 서류를 서울 서초동 소재 J법무법인에서 공증(3만원) 받은 뒤 2월 11일 경기 시흥등기소에 제출해 명의 변경(5만원)을 마쳤다. 자산규모 300억원대의 건설회사를 자신들의 명의로 감쪽같이 돌려놓는 데 이들이 들인 비용은 고작 13만원이었다.
이들은 이후 새 경영진 행세를 하며 160억원에 회사를 팔겠다고 부동산 컨설팅업자 등을 접촉했다.'K건설이 매물로 나왔다'는 부동산 업계의 소문을 접한 K건설 직원이 진위 확인에 나섰고 수사를 의뢰, 이달 20일께 덜미가 잡혔다. 300억원대의 건설회사를 '접수'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백일몽(白日夢)'으로 막을 내렸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8일 권씨 등 2명에 대해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모(69)씨 등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상장 회사의 경우 상장 회사와 달리 주식 변동 상황에 대해 신고 의무가 없어 실제 주주가 누구인지, 소유 주식이 얼마인지 파악하는 게 어렵다"며 "법무법인이 대표이사 교체 등의 사안에 대한 공증업무를 할 경우 해임된 대표이사의 의사까지 확인해야 하는 규정이 없는 점을 악용한 사기 행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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