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지펀드 목에 방울달기' 각국 이해 극과 극
한나라가 거의 망해갈 무렵, 동탁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원소, 손견, 공손찬 등 17명의 제후는 한나라의 정통성을 회복하겠다는 명분하에 연합군을 구성하여 동탁에 대항한다. 승리가 목전에 다가온 바로 그 때,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고 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제후들의 욕심으로 연합전선은 무너지고 만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 일화는 명분으로 뭉친 사람들도 사사로운 이해 앞에서는 사분오열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국제금융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계 전체를 강타한 2008년의 금융위기, 그 주범으로 꼽힌 것이 바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던 파생금융상품이다. 그걸 규제해야 한다고 모든 나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도 수없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이를 실천에 옮길 단계에 이르자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당긴 것은 독일이다. 독일은 현재진행형인 유럽 금융위기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위치에 서 있는 나라이다. 왜 금융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는가? 독일은 그 책임이 투기세력에 있다고 보았다. 특히 '벌거벗은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라고 불리는 투기형태를 주목했다. 이 거래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금융상품을 먼저 팔고, 가격이 하락하면 낮은 가격에 현물을 사서 되갚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거래가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하기 쉽다. 유럽주가가 폭락한 것도, 유로화가 급락한 것도 이 벌거숭이의 책임이 크다고 독일은 보았다. 그래서 지난 5월 18일, 독일 금융감독청은 유로지역 국채와 10개의 독일 금융기관 주식에 대해 '벌거벗은 공매도'를 내년 3월까지 금지한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반격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반격은 시장이 주도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유로화 가치는 더 떨어졌다. 시장불안을 막자고 규제안을 들고 나왔는데 오히려 시장불안이 더 심해졌다. 왜 그런가? 시장은 본질적으로 규제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반격은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동료 국가들로부터 나왔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독일의 조치가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더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공매도 제한방침은 지난 3월, 독일과 프랑스에 의해 처음 언론에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독일과 유럽연합(EU)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프랑스로서는 독일이 자기들과 아무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영국도 반발했다. 런던의 시티는 월가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을 이끄는 한 축이다. 당연히 금융거래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유럽 헤지펀드의 약 80%가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벌거벗은 공매도'는 헤지펀드들의 주요 수익원이다. 거래가 위축되면 영국 금융시장이 타격을 받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국 금융감독청은 독일의 규제조치는 독일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김 빼기에 나섰다. 캐머런 총리는 앞으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는 "각 국가가 자국의 경제상황에 따라 스스로의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거들고 나섰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전부터 유럽이 독자적인 규제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자국의 금융기관을 차별할까 봐 걱정했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런 우려를 유럽 각국에 공식서한으로 전달하기까지 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정부는 아직 공식적 반응을 내 놓고 있지는 않지만 가이트너 장관의 유럽 순방 중 반대입장을 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물론 월가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 금융시장이 불안한 것은 유럽국가들의 방만한 재정운용이 원인이지 헤지펀드가 죄인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금융규제에 대해 나라별로 의견이 다른 것은 이번 사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논의되고 있는 거의 모든 규제관련 이슈에서 이런 분열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은행세 도입, 대형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와 같이 훨씬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남아 있다. G20에서 이런 사안이 통일된 견해로 정리되기를 기대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지금 세계경제는 리먼사태의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남유럽 재정위기라는 복병을 만나 주춤거리고 있다. 여기에 금융규제를 둘러싼 주요국의 분열이 또 다른 리스크로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기나라의 이해관계를 떠나 좀 더 큰 명분을 추구하자고 호소하는 것이, 손견이 발견한 옥새를 황제에게 돌려주고, 한나라의 명맥을 이어가자고 호소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성병묵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과장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