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를 다녀오기 전까지 나는 커피에 대해서 '냉소주의자'였다. 커피보다는 우리 차를 즐겨 마시는 '국수주의자'였다. 동티모르를 다녀와서는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이 변했다. 커피에 가난한 농부의 '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커피에 식민지의 '눈물'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의 동티모르 여행은 커피농사를 돕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커피나무가 꼭두서니과의 상록 관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쯤 동티모르 고산지대에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사는, 명품 아라비카종(種) 커피나무에 하얀 꽃이 지고 있거나 앵두 크기와 비슷한 초록의 커피열매가 따닥따닥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열매가 빨갛게 잘 익어야 열매 속의 '생두'가 익는다. 커피나무에 흰 꽃이 피고 푸른 열매가 맺혔다가 빨갛게 익는다는 것을 동티모르에서 배웠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커피나무 옆에는 반드시 그림자 나무인 '셰이드 트리'(Shade Tree)가 있다. 적도 부근의 뜨거운 햇살을 우산처럼 막아주는 셰이드 트리가 있어야 커피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도 알았다.
나무가 나무를 지켜주는 '동행'과 '우정'에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 사는 일이 햇살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셰이드 트리를 보며 깨달았다.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나는 누구의 셰이드 트리인 적이 있었던가를 곰곰 생각해보는 날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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