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제, 영감한테 면목이 섰응게."
전남 신안군 안좌도의 김순단(86) 할머니는 요즘 살맛이 난다. 한국전쟁 때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다가 총상을 입어 그 후유증 때문에 평생 고생했던 남편의 공과 아픔을 국가가 60년 만에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사연은 올 1월 세상에 알려졌다(본보 1월14일 11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최중규(목포경찰서 안좌파출소) 경사는 순찰을 돌던 중 헤진 누비옷으로 삭풍을 견디며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김 할머니를 만났다. 최 경사가 찾은 할머니의 집은 오른편은 주저앉고 창고는 무너진데다 방안은 얼음장이었다. 할머니가 더듬은 긴 세월은 더 애절했다.
김 할머니의 남편 최길환(1994년 사망)씨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강 이남을 지키다 인민군의 총탄을 맞고 3년간 국군병원에서 수술만 세 차례나 받았다. 고향인 외딴 섬에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인해 평생 약을 달고 살았고 숨지기 3년 전부터 온몸이 마비됐다. 장성한 6남매는 속속 뭍으로 떠났다.
노(老)부부의 딱한 처지를 지켜본 주민들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해보라고 귀띔해줘 어렵사리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육군참모총장의 직인이 찍힌 '전공상(전쟁이나 공무로 입은 상해) 확인통보서'가 오기 나흘 전에 숨졌다. 상중(喪中)인 데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할머니에게 뒤늦은 서류 한 장은 종이쪽에 불과했다. 더구나 신체검사(총상 여부 확인) 등 심사를 받아야 하는 남편은 무덤에 묻힌 뒤였다.
최 경사는 올해 초 김 할머니의 사연을 '어느 섬마을 경찰관이 보낸 눈물겨운 호소문'이란 제목으로 경찰 내부 전산망에 올렸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본인이 사망해도 유족 진술, 진료기록 등을 제시하면 유공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최 경사의 노력 덕에 김 할머니의 남편은 4월8일 국가유공자가 됐다.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증서도 발급받았다.
매달 노령연금 8만8,000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김 할머니는 이제 매달 49만9,000원의 국가유공자 유족연금을 받고 있다. 김 할머니는 "늘 죄인처럼 살았던 우리 영감 명예를 회복해 기쁘다"고 웃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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