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낮 12시 30분 축제가 한창인 경희대 사회교육원 건물 앞. 초록색 파라솔 2개와 테이블 2개의 단출한 간이 매대가 서자마자 학생과 교직원 등 10여 명이 줄을 선다. 한꺼번에 몰려든 손님들이 "토마토주스 두 잔 주세요", "떡볶이는 안 팔아요?"라며 주문을 쏟아내자 나이 지긋한 판매원들은 정신이 없다. 머리에 얹은 빨간 위생모는 삐뚜름하고, 방금 받은 주문조차 까먹고 허둥대기 일쑤. 누가 봐도 어설픈 초보인데, 그래도 뭐가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장사도 잘 되고, 저희도 대학생이 된 기분이라 참 좋네요. 하하"
이날 축제에는 지난해 이 학교에서 자활프로그램 '희망의 인문학'(이하 인문학)을 수료한 전(前) 노숙인들의 봉사모임 ''이 함께 했다. 독거노인과 소년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생과일주스와 아이스 티, 떡볶이를 파는 축제매점 '토브(TOVㆍ히브리어로 행운을 빈다는 뜻)하우스'를 차린 것. 공공근로와 희망근로로 생활하는 회원 배동효(47), 전인중(46), 김장권(62), 이상영(46), 박태선(63)씨가 십시일반으로 50만원을 모아 재료를 마련했고, 취지에 공감한 시민 한금순(52), 이성자(54)씨도 동참했다.
"딸기 둘, 키위 하나요." 마수걸이는 남학생 3명이 해줬다. 하지만 첫 손님맞이의 기쁨도 잠시. 주스를 마셔보던 사회교육원생 이창민(39)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싱거워서 딸기 향만 나요." 무안해하는 회원들에게 그는 "과일주스를 팔아본 경험이 있는데, 양이 적어도 걸쭉해야 맛있으니 물을 조금만 넣어보세요"라며 조언해줬다. 쥬스 담당인 한금순씨의 걸쭉하게 업그레이드된 주스는 인기 만점. 순식간에 30잔 남짓 팔려 준비한 오렌지, 키위, 토마토가 금세 동났다.
빠듯한 자본금 탓에 이들이 준비한 재료-오렌지 15개, 토마토 10개, 키위 10개, 딸기 3박스-가 빈약했다는 얘기다. 간사인 배동효씨는 전인중씨에게 "퍼뜩 과일 좀 사오라"며 시장에 급파하곤 "우리도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떡볶이도 호응이 컸다. 첫 손님인 경희의료원 직원 윤민지(28)씨는 "조금 맵다"면서도 5분만에 한 접시를 비웠고, 무용학부 조한아(21) 황근영(20)씨도 "이 분들이 만든 떡볶이에는 정성과 사랑이 넘쳐 특히 더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토브하우스는 오후 3시까지 20만원 가량 매출을 올리며 선전했으나 실속은 별로 없었다. 2,000원짜리 키위주스에 세 개씩 갈아넣고, 컵라면 용기 한 가득 담긴 쌀떡볶이도 단돈 2,000원이었기 때문이다. 배동효 간사는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행사 취지를 알고 많이 참여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며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학교측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문학을 담당하는 이 학교 실천인문학센터(인문센터)가 졸업생들에게 주점ㆍ커피숍 등을 열어 축제에 참여하도록 장소를 제공했고, 복지시설과 시민단체 등 5개 기관이 신청한 것. 행사를 기획한 인문센터 이정만씨는 "인문학 과정을 마친 후에도 학생과 어울리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2학기 대동제 때도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도전은 28일에도 계속된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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