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11시 어머니 A(52)씨는 평소 활동하던 서울 모 구청 봉사활동에 늦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사회복지사가 오기로 한 오후 1시까지 집에 있던 대학생인 아들 B(20)씨에게 치매를 앓는 친정어머니 병 간호를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A씨가 집을 나서자마자, B씨는 친구를 집으로 부른 뒤 집에 있던 서양화 2점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앓고 있는 외할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뒤 화랑을 찾아가 친구 병원비를 핑계 대며 그림 2점을 60만원에 팔아 유흥비로 탕진했다.
A씨가 경기 양평에서 화랑을 경영하다 2005년 접은 뒤 남은 그림 20점을 집안의 다용도실에 보관해뒀는데 아들은 지난 3월 말부터 A씨가 자원봉사활동 등으로 집을 비울 때마다 곶감 빼 먹듯 그림을 하나하나 화랑에 팔아 치웠다.
A씨가 그림이 모두 없어진 것을 발견한 건 이달 초. 도둑이 든 걸로 생각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외부침입 흔적이 없는 점에 따라 아들을 추궁, 범행을 자백받았다. 그림전문가인 A씨는 20점의 감정가가 5,000만원 상당이라고 신고했지만 아들이 이를 팔아 챙긴 돈은 600만원에 불과했다. 남편 없이 홀로 B씨와 친정어머니를 뒷바라지 해오던 그는 화랑을 접은 뒤 교육 관련 사업을 하면서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안팎으로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본을 따를 만큼 철이 들지 않은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내가 도둑놈을 키웠어'라며 자조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직계혈족과 배우자 사이에 일어난 절도·사기죄는 형을 면제한다는 형법상 특례조항에 따라 B씨를 처벌하지 않았지만 함께 그림을 나른 B씨 친구와 그림을 산 화랑주인 등 5명은 26일 불구속 입건됐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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