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두고두고 그 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담임 교사와 상담을 했던 날 말이다. 상담이 무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학생이 아닌 학부모로서 교사를 만나는 게 처음인 초보 엄마로선 떨리고 긴장되는 경험이었다.
교사는 먼저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리 아이는 미술보다 글자 놀이를 좋아하고, 처음 하는 놀이에는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말이나 대소변 가리기는 빠른 편이지만 혼자 밥 먹는 데는 아직 서툴다고 했다.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관찰하고 노트에 기록해둔 교사를 보며 역시 전문가라 다르구나 싶었고, 그 동안 엄마로서 게을렀음을 반성도 하게 됐다.
20여분 간 이어진 설명 후 교사가 궁금한 걸 물어보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센 것 같은데,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너무 싸우지는 않는지 걱정된다고 했다. 교사의 설명대로 처음 본 장난감을 유독 낯설어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닌지도 궁금했다.
교사는 웃으며 "다른 어머니들도 대부분 비슷하게 질문을 하신다"고 했다. 27개월인 지금 나이엔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보다 그냥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아는 게 더 의미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내 질문이 대부분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는 수도 적고 배열도 엉성하다. 그러다 3개월쯤 지나면 성인의 뇌에 가까울 정도로 신경세포가 늘어 뇌 속에서 빽빽한 그물망을 형성한다. 이를 근거로 과학자들은 생후 3개월 동안 아기가 접한 주변 환경이 뇌의 기본 골격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와 손길, 우유와 옷 냄새, 집안의 소리와 색깔 등이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뇌 신경세포 그물망의 기본 골격 역시 조금씩 다르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아이는 처음 본 거라도 척척 기억하고, 어떤 아이는 유달리 소리에 민감하고, 어떤 아이는 손재주가 남다르게 성장한다. 이는 발달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차이일 뿐 굳이 비교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기자로선 잘 알고 있었던 과학적 사실을 교사 앞에 처음 불려간 초보 엄마가 되니 잠시 잊었음을 깨달았다. 같은 놀이, 같은 행동이라도 우리 아이 뇌는 다른 아이 뇌와 다른 경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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