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깡패와 청년 백수의 사연을 그린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지난 20일 개봉해 첫 주 30만 관객(25일 기준 35만9,000명)을 모았다. 최근 충무로 흥행작 '하녀'의 첫 주 82만 명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지만 제작사 JK필름 관계자들은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번 주면 손익분기점(70만명)을 넘어서 흑자영화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은 돈으로 남루한 현실을 담은 영화로는 흥행전선에서 의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충무로의 중론이다.
사회 변두리 인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저예산 '서민영화' 들이 잇달아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총제작비(순제작비에 마케팅비 등을 포함) 평균(47억원)에 못 미치는 돈으로 상업성과 사회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한국영화계에 의미 있는 흥행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흥행에서도 잇단 선전
서민영화들은 우리 시대의 비루한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3월 18일 개봉한 '육혈포 강도단'은 하와이 여행을 위해 모은 돈을 순식간에 잃은 뒤 은행 강도단으로 변신한 할머니들의 요절복통 행각이 물기 어린 웃음을 전한다. 황혼의 고독을 진득이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총제작비 35억원(순제작비 19억원)으로 123만명을 모아 흑자를 기록했다. 젊은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성적치고는 놀랍다.
중년 백수와 형사의 우스꽝스러운 인연을 지렛대로 눅눅한 현실을 들추는 '반가운 살인자'도 흥행에서 분투했다. 사업에 실패해 사회에서 용도 폐기된 가장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 영화는 총제작비 19억2,000만원(순제작비 9억2,000만원)을 들였으며 60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겨우 손익분기점에 다다랐지만 118편 중 고작 16편만이 수지타산을 맞춘 지난해 한국영화 성적표를 감안하면 무시 못할 결과다.
변두리 반지하 방의 쓸쓸한 인생들을 조명한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총제작비(순제작비 8억2,000만원)도 20억원으로 단출하다. 적은 돈으로 사회의 낮은 곳을 비추는 감독의 연출력이 빛난다.
충무로 불황 탈출 새 바람
화려한 소재와 세련된 만듦새가 부족한 서민영화의 흥행 필살기는 웃음이다. 흑자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육혈포 강도단'과 '반가운 살인자', '내 깡패 같은 애인'의 공통 분모는 코미디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내며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다. 태생적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끌기 어려운 저예산 서민영화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제작사 JK필름의 한지선 마케팅실장은 "규모가 작은 영화는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관객이 귀신처럼 알아채고 진정성만 강조해도 관객들이 외면한다"며 "코미디로 상업적인 면을 부각시켰다"고 밝혔다. 세 영화의 투자배급을 맡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한국영화팀장은 "한국 관객들의 정서는 코미디를 더 선호한다. 영화의 무게감과 재미를 조화시키기가 제일 어렵다"고 말했다.
서민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영화계는 반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관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불황 구름을 몰아낼 새 바람이 되길 바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서민영화 속 내용들이 너무 뻔하고 신파라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며 "극장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만족도를 주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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