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가 폐막되었다. 아이슬란드 화산재, 헐리우드 스타의 불참, 아시아 영화의 약진 등등 뒷이야기가 풍성하다. 황금종려상은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 주연상은 유럽을 대표하는 두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돌아갔다. 둘은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를 함께 석권한 대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창동 감독이 로 각본상을 수상한 것도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우리 언론 일부에서는 황금종려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심사위원장 팀 버튼의 영화적 취향이나 정치적 몸살을 앓고 있는 태국을 위한 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며, 언젠가는 황금종려상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등의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번 칸 영화제 심사 결과는 신중하고 정확하고 냉정했다고 본다. 이제는 트윗터를 통해, 온 라인을 통해 서울에 앉아서도 세계 언론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칸 영화제에서 경쟁작 상영 5초 뒤면 트위터에 전 세계 기자들의 진솔한 의견이 뜬다. 불어든 독어든 번역기만 돌리면 웬만큼 알아 볼 수 있는 영어 기사로 생생한 칸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국내 언론이 계속해서 영화 의 황금종려상 가능성에 무게를 둘 때도, 이미 인디 와이어 지 등 세계 언론은 과 가 비평을 리드하고 있으며,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라고 보도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대한민국의 강점이 열정과 열의에 있지만, 어떤 때 보면 냉정함의 미덕이나 냉정한 평가가 참으로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같은 영화가 기를 써도 관객 4만 명을 넘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같은 영화가 칸에서 각본상을 받을 때,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에서 각본 부문에 0점을 준 나라에 살고 있다. 또한 1980~90년대 멜로 장르를 휩쓴 명망 있는 감독이 ‘일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현실 한 가운데 살고 있다. 이런 판에 한국 영화계에서 황금종려상이 쑥쑥 나오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 아닌가?
이야기를 조금 확대해보자. 선거철을 맞아 온 나라가 흥분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선거 관련 전화를 받고, 또 다시 북풍이 몰아친다. 냉정한 외부자의 시선은 부재하고, 입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하다. 물론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는 우리의 국운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뽑아야 하는 것은 시장이고, 교육감이고, 시의원들이다. 누구를 뽑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가 몇 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결정되고, 우리 동네에 다리 하나가 더 생길지 결정된다. 대체 내가 뽑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경력을 지녔는가? 어떤 공약을 내 걸고, 어떤 인품을 지닌 사람인가?
이제는 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선거에 임하자. 이제는 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세계의 평가를 받아들이자. 영화제를 올림픽처럼 대할수록, TV에서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개그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북한에 감정적 대응을 할 수록, 내가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당 대 당의 거대 담론 속에 사그라져 버린다. 냉정함의 미덕. 꼼꼼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지방선거를 치른 다음, 월드컵 때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열정을 저 하늘만큼 분출해도 늦지 않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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