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의 일등공신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어뢰 추진부 잔해를 끌어올린 쌍끌이 어선이다. 이 배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는 천안함 침몰 원인과 격침 주체 등을 놓고 끝없는 논란을 이어갔을지 모른다. 정부ㆍ여당도 여러 정황상 북한의 소행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명시적으로 북한을 도발 세력으로 규정하고 응징할 수 없어 난감해 했을 것이다.
여당의 쌍끌이 '천안함·전교조'
쌍끌이 어선의 도움으로 북풍(北風)은 현실이 됐다.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건져낸 어뢰 잔해는 정부ㆍ여당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대북 정책에서 애매한 행보를 거듭해 왔고, 그로 인해 전통적 지지세력인 보수층의 비난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어뢰 잔해는 더 이상의 모호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북 정책은 일체의 교류 단절과 '이에는 이'식 응징이라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방향으로 정리됐다. 보수층의 결집과 지지에 더하여 중도층의 안보 심리까지 자극하는 쌍끌이 효과를 거두게 됐다.
북풍은 한나라당 지방선거 전략의 큰 축이 됐다. 야당의 폭로 문건에도 불구하고 북풍이 여당의 치밀한 기획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 할 수도 없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발표하려 애쓴 것이 그런 의심의 출발점이다. 진정 공명선거 분위기 조성 의지가 있었다면 그토록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내진 않았을 것이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바람몰이는 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 발표 전 날 전국 감사담당 과장 회의를 개최,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국가공무원법 위반 등)로 기소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 134명의 파면ㆍ해임을 지시했다. 교과부의 조치는 선거전에서 친 전교조 대 반 전교조 세력 간 전선 구축에 성공했다.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및 법원의 명단 삭제 결정 불복, 동료 한나라당 의원들의 릴레이 명단 공개로 촉발된 전교조 때리기 바람(교풍ㆍ敎風)을 교육감 선거의 표심을 가를 확실한 소재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북풍을 주선(主船)으로, 교풍을 종선(從船)으로 삼은 정부ㆍ여당의 쌍끌이 선거 전략은 썩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권력을 동원해 상대 세력의 입을 막으려 하고, 그토록 강조하던 법치주의의 원칙마저 무너뜨리는 모습이 그렇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규명해야 할 문제들은 아직도 산적한 상태다. 조사단 발표가 모든 의문과 의혹을 잠재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발표가 있자마자 경찰은 인터넷상의 유언비어 단속에 나섰다. 물론 사실의 날조나 조작은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행보는 정부와 여당에 유리하지 않은, 다양하고도 합리적인 의심이나 의문의 제기마저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좌초설을 제기한 전 정권 인사나 민간 조사위원에 대한 검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유엔 특별보고관의 보고는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교과부는 전교조가 소속 교사의 민노당 가입을 전면 부인하는데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검찰 기소만을 근거로 교사 중징계를 밀어붙였다. 법치를 강조하면서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마저 무시하는 태도는 오만하고 후안무치한 것이다. 또 이번 선거에서 선출될 다음 시ㆍ도 교육감의 권한 행사에 미리 제약을 두는 것은 교육자치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선거판엔 공정한 룰 작동해야
선거관리위원회는 또 어떤가. 정부의 4대 강 사업 홍보는 놔둔 채 선거 전부터 계속돼 온 시민사회단체의 4대 강 사업 반대 홍보행위만 불법 선거운동으로 규정했다. 시민단체들은 강행하려 하지만 차후 검찰 고발로 이어질 수도 있어 차질과 타격은 불가피하다.
중량급 선수가 중립적이어야 할 심판의 은근한 지원까지 받으며 헤드기어와 마우스피스도 갖추지 못한 경량급 선수와 권투를 한다면 경기 결과는 뻔하다. 체급을 키우지 못하고 마땅한 방어 장비도 준비하지 못한 경량급 선수의 책임도 있지만 그런 경기는 결코 공정하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작금의 선거판 양상 아닐까.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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