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태 발발 60일만인 25일 처음으로 '주적'개념을 언급했다. 전날 강경한 대북 조치를 밝혔던 이 대통령이 주적 재정립 필요성을 밝힌 것이다.
이 언급은 천안함 사태 후속 조치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도발한 북한을 이제는 주적으로 규정함으로써 후속 대책의 일관성과 정당성을 유지하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를 대북정책 전반의 패러다임 시프트(인식 전환)가 담긴 전날의 대국민 담화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달라고 주문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의 햇볕정책의 유산들을 정리한 이 대통령이 이제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혔다는 뜻이다.
천안함 사태 발발 후 이 대통령은 주적 개념에 상당히 고심해왔다. 지난 4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과거) 안보대상이 뚜렷하지 않도록 만든 외부환경이 있었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군 내부의 혼란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군 안보 의식 해이의 원인을 주적 개념 상실에서 찾은 것이다. 물론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기를 삭제한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주적 개념을 되살릴 생각이지만 주적이 처음 국방백서에 표기된 1995년 당시로 시계를 되돌릴 것 같지는 않다. 당시 백서에는 '주적인 북한'으로 단순하게 표기됐다.
이 대통령은 담화에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한민족의 공동번영, 나아가 평화통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주적인 측면도 있지만 협력과 통일의 대상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쌍방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라는 구절과도 맥이 닿는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는 실질적인 주적인 북한의 군대와 무력을 주적으로 표기해 북한 주민과 분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양면성 중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북한'이라는 측면만을 부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주적 표기를 삭제하면서 북한을'직접적이고 심각한 군사위협' 등으로 대체 표기했었다.
하지만 주적 개념(표기) 부활 또는 재정립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표기했을 경우 실익이 무엇이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지난달 "주적 개념 자체는 존재하고 있고 장병들에게 교육하고 있다"면서 "국방백서에 표현을 주적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적 표기를 삭제했던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 무기를 들고 서로 대치하는 현실보다 더 강한 주적 개념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밝힌 논리와 맥이 닿는 발언이다.
1년 내내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경우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고 '위협'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최근 천안함 사태 종합보고서를 제출한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의 일부 위원들도 논의 과정에서 주적 표기의 실익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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