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는 한국에서 호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GM이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만해도 '종주국 브랜드'의 국내 상륙에 거는 기대가 꽤 컸지만, 8년이 지난 지금 국민적 시선은 싸늘하게 변해있다. 토종 현대ㆍ기아차를 위협할 획기적 신차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배당과 라이선스 로열티를 통해 이미 투자한 돈의 몇 배를 회수해갔고, 머지 않아 브랜드에서 '대우'란 두 글자까지 아예 없앤다 하니, 이 회사를 보는 일반 정서가 좋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기업이 항상 국민들 마음 같이 행동할 수는 없는 법. 국내 기업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외국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미국자동차 회사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어쨌든 청산위기의 대우차를 살린 사실, 그럼으로써 고용을 유지한 사실은 기꺼이 평가해주는 게 공정하다고 본다.
GM대우의 순기능은 하나 더 있다. 국가안보. 대우차가 GM에 넘어갈 당시 반대여론이 제기되자 정부는 "GM같은 미국회사가 한국에 공장을 갖는다면 주한미군 몇 만명이 주둔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설득했다.
맞는 얘기였다. 자국기업이 투자한 나라가 안보에 위협을 받는다면, 자국기업과 기업인의 안보 또한 위협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진출한 미국기업이 많을수록, 미국정부의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모르면 몰라도, GM의 대우차 투자로 미국의 한반도 안정에 대한 관심이 몇 퍼센트는 커졌을 것이다.
지금 한반도 긴장은 폭발직전 상황이다. 더 이상 북한에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는 없고, 결국 이 숨막히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곳은 오직 국제사회뿐이다. 그 중에서도 남북한에 가장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과 중국. 더 좁히면 북한을 압박하고 자제시킬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현실적으로 중국뿐이란 걸 세상은 다 안다.
중국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사업장을 갖게 된다면, 그리고 더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면, 그럼으로써 한국에 더 많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면, 중국정부 역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지금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한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국민 자국기업 자국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미국, 중국, 그리고 국제적 영향력이 큰 다른 강대국들이 이 땅에서 분쟁 보다는 평온이 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실질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군사ㆍ외교적 역량 못지 않게, 이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확대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이들 나라의 기업들이 한국에 더 많은 투자와 교역을 하게 된다면 각국은 자국기업과 투자자산보호를 위해서라도 더 팔을 걷어붙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보가 군사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경제도 강력한 분쟁억지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좀 더 개방된 경제, 더 많은 외국기업과 기업인을 유치할 수 있는 경제로 향한다면 그만큼 안보의 울타리도 튼튼해지게 될 것이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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