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최고' 건설회사는 어딜까. 최고(最高)라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우건설, GS건설 등이 손을 들겠지만 최고(最古)라면 경북 포항의 삼건사다. 1944년 설립한 이 회사는 시공능력평가 436위의 중소업체지만 수로와 댐 공사 분야에 특화된 전문기업으로, 대형업체가 명멸한 7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왔다. 지방 건설업체가 미분양으로 고생하는 요즘도, 이 회사는 4대강 관련 토목사업을 수주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 1958년 설립된 삼일기업공사는 시공능력평가 174위의 업체지만, 신용은 최우량(건설공제조합 AAA 등급)이다. 병원과 전화국, 고건축 등 특화된 기술력을 요하는 건축부문과 토목ㆍ플랜트 분야에서의 독보적 기술력 덕분에 부채비율이 20%도 안되고 현금성 자산은 넘쳐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25일 "건설경기 침체와 미분양사태로 내로라하는 중견 업체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60년 넘게 업력을 쌓아가고 업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장수 건설업체의 유전자(DNA)를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
건산연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에서 40년 이상 된 장수 건설사는 총 115곳인데, 이 가운데 72%는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밖인 중소 건설사이다. 이들 장수 업체의 공통점은 ▦높은 공공ㆍ토목공사 비중을 가지거나 ▦주택분양과 자체개발사업을 자제하고 ▦무차입 경영 원칙 등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권오현 건산연 건설산업연구실장은 "공공공사 비중이 65.7%에 달할 정도로 높고, 위험성 높은 주택 및 자체 개발사업을 최대한 자제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극도로 위험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해온 것이 장수의 비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은 앞으로도 장수할 것인가. 연구원에 따르면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수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과거의 장수 비결만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 실장은 "특정 분야에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경우라면 당연히 장수 가능성이 높지만, 지방에 기반을 둔 상당수 중소업체는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공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공공부문에 대한 대형 업체의 공략이 본격화하면서 중소 장수 건설업체들이 생존의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업체 스스로 시장변화를 예측하고 사업체질을 적절하게 바꾸는 등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육성방안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장수 건설사 가운데 특히 중소업체들은 몸집을 키우기 위한 무리한 수주와 사업확장을 피하고 안정적인 공공공사에만 집중한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시장 변화에 따른 적절한 변신에 실패하면 기업의 존속도 보장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 실장은 "모범적인 장수 중소업체는 장차 우량 중견기업으로, 우량 중견업체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당국이 정책비전과 구체적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시적인 문제로 우수한 장수기업이 도산하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도 따라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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