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무리 많아도 안보가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김용철(89)옹은 25일 평생 모은 9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국방 연구에 기증하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투였다. “다들 국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아무도 선뜻 나서지는 않더라구요.”
김옹은 1950년대 대한수리조합(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20여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이후 전남 광주에서 중소 섬유공장을 운영했고 공장을 정리하면서 토지보상금을 받아 현재의 재산을 일궜다. 거액의 자산가지만 정작 김옹 자신은 양 복 한 벌과 다 닳은 와이셔츠, 구두 한 켤레가 전부다. 한 끼에 1만원이 넘는 식사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옹은 지난해 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흔히 고액 자산가들이 기부하듯 학교나 재단 설립을 고심하다가 국방 분야로 생각을 바꿨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는 평소 신념도 작용했다. 김옹은 “내가 일제 시대와 6ㆍ25전쟁을 다 겪었는데 앞으로 후손들이 국가 없는 핍박을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김옹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손자뻘 되는 젊은 군인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현실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김옹의 뜻을 알게 된 국방부는 기부의 상징성과 기부자의 명예를 고려해 다양한 사용처를 물색하다가 무기 체계와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한국국방연구원(ADD)를 떠올렸다. 마침 고에너지 물질, 저탄소 연료전지, 초정밀 미사일 등 첨단 신무기에 적용할 전용 시설인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를 건립하려던 참이었다. 김옹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지는 연구센터는 28일 기공식을 갖는다.
군은 연구센터가 완공되면 김옹의 호를 따서 의범(義範)기념관을 만들고 그의 소장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방침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5일 “김옹이 보여준 귀감은 국가 안보 의식 고취와 범국민적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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