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프랑스 칸은 아침부터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복합건물 '팔레 드 페스티벌'을 에워쌌다. 기자와 관객에 대한 검문검색은 삼엄했다. 경쟁부문 상영장인 뤼미에르 극장 입구엔 물병들이 수북이 쌓였다. 보안요원들에 의해 압수된 것들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프랑스 극우파의 테러를 막기 위해 영화제 직원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이날 상영된 알제리 영화 '아웃사이드 오브 더 로'(감독 라시드 부카렙)가 불씨를 제공했다.
'아웃사이드 오브 더 로'는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어느 삼형제의 조국을 위한 각기 다른 분투가 131분 동안 펼쳐진다. 식민종주국 프랑스가 타도의 대상으로 줄곧 묘사된다. 프랑스 경찰과 군인이 알제리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스크린을 채운다. 식민통치의 기억을 자랑스레 여기지 않는다 해도 프랑스인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을 그린 한국영화가 일본 도쿄영화제에서 대대적으로 상영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까. 극우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는 이 영화를 초대했고, 썩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데도 관객들은 네 차례의 박수와 함께 뜨거운 환호성을 안겼다.
할리우드 영화 '로빈 후드'는 프랑스 왕을 권모술수에 능하고 영국 민중을 탄압하는 악당으로 그린다. 그런데도 칸 영화제의 개막을 장식했다. 프랑스인들의 정치적, 문화적 관용이 다시금 느껴졌다.
해변에서 밤에 열린 '라 플라쥐' 부문도 남달랐다.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행사'인 이 부문에 상영된 영화들은 진지하고 또 진지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연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 고전과 문제작들이 상영됐다. 놀아도 생각하면서 놀겠다는 프랑스인의 자의식이 엿보였다. 주로 오락성 짙은 최신 영화들을 야외공간에서 상영하는 한국의 영화제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눈길을 잡은 영화는 '두 명의 에스코바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었다가 귀국 후 살해된 콜롬비아 축구 선수 안드레아스 에스코바르의 일화를 담았다. 올해 월드컵을 마냥 떠들썩하게 보내지는 말라는 영화제의 권유처럼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4년 동안 공부한 한 영화인은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잰 체한다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긴 높다."
올해 칸은 여러 면에서 흉년이란 평가를 받았다. 예년에 비해 태작이 많았고, 마켓도 썰렁했다. 그래도 그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으며 영화제를 세계적 문화행사로 이어갔다. 칸은 달리 칸이 아니었다.
칸에서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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