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과 '천재'의 한 방에 1억 열도가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일방적인 응원을 펼치던 6만 여명은 순간 숨을 죽였고, 대한해협 넘어 한국에서는 승리의 함성이 메아리 쳤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출전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것도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의 안방에서 거둔 승리여서 더욱 짜릿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24일 사이타마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AS모나코)의 연속골을 앞세워 2-0으로 승리했다. 결승골을 넣은 박지성은 경기 MVP로 선정됐다.
경기 시작 전부터 뜨겁게 달아 오르던 6만 여명의 '울트라 닛폰'을 한 순간에 잠재운 것은 전반 6분. 이날 왼쪽 날개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박지성은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은 뒤 상대 아크 오른쪽 부근에서 페널티지역 안쪽으로 과감히 치고 들어가 지체 없이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일본 골키퍼 나라자키 세이고가 몸을 날렸지만 이미 박지성의 발 끝을 떠난 볼은 골대 왼쪽 구석에 그대로 꽂혔다. 그물이 찢어질 듯 낮고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명품 슈팅'이었다.
박지성은 일본 문전 뒤편에 웅크린 '울트라 닛폰' 앞을 보란 듯이 누비며 포효했고, "한국이 한 수 위"라는 변함 없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박지성은 A매치 87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고, 한국은 역대 전적 40승 20무 12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했다.
특히 박지성의 골은 역대 일본 전 생애 첫 골이다. 10년 만에 처음 맛보는 짜릿함은 보너스였다. 2000년 4월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1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한 박지성은 그 해 6월 당시 LG컵 이란 4개국 친선대회 마케도니아 전에서 데뷔 골을 터트렸다.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치러진 한일전이 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대기명단에 있던 박지성은 전반 40분 최용수(서울 코치) 대신 투입된 게 다였다.
박지성의 진가는 골을 넣어 승리를 이끈 것만이 아니었다. '2개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물 불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볼을 빼앗기면 끝까지 달려가 기어코 다시 볼을 빼앗아 냈다. 그런 박지성의 모습에 대표팀 후배들의 투쟁심도 자연스레 솟구쳐 올랐고, 태클을 걸고 상대와의 몸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경기를 지배할 수 있었다. 결국 후반 교체 투입된 박주영이 45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오른 발로 마무리 하면서 쐐기를 박았다.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을 상대로 10년 만에 '첫 골도 넣고 후배들의 투지도 일깨우고.' 완장을 차는 주장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준 한 판이었다.
한편 국내 출정식에서 또 다시 한국에 패한 '오카다호'는 팬들의 거센 비난 속에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일본전 승리로 기세를 올린 '허정무호'는 25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출국, 남아공월드컵을 대비한 최종 담금질에 들어간다. 한국은 30일 벨로루시, 다음달 4일 스페인과의 두 차례 평가전을 치른 뒤 '결전의 땅' 남아공에 입성하게 된다.
사이타마=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