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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47> 제자를 길러내는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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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47> 제자를 길러내는 보람

입력
2010.05.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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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평생 뭔가를 하고 뭔가를 남긴다. 사업가는 물건을 만들고 공직자는 공공업적을 낳고 교육자는 사람을 키운다. 이 가운데 사람을 키우는 일 만큼 보람을 느끼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교직자들이 자기 직업에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낳은 것에 깊은 사랑을 갖는다. 이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업가는 자기가 만든 제품에 대해 애착을 가질 것이다. 교육자와 제자의 관계도 그러하다. 제자를 잘 가르쳐서 제자가 크는 모습을 보는 보람, 그리고 제자들이 커서 스승을 찾아 만날 때의 인간적인 기쁨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인간관계란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제관계는 이와 다르다.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처럼 사랑과 존경의 순수함이 있고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나는 열정을 담아 제자들을 가르쳤다. 내가 25년 동안 그렇게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 수많은 제자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흩어져 일하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이들을 만난다. 이들을 만날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2008년 이곳 평창동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26년간을 갈현동의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거기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여기서 매년 수백 개에서 1,000개의 감을 수확하는데 졸업기별로 제자들이 와서 감을 따 나누고 저녁에는 소주파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제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나무에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 후배들이 이어받아 감 따러 오는 제자들이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기도 했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은 명절이나 스승의 날에 찾아오거나 전화로 안부를 전해오는 일이 많고 졸업기별로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모임은 여럿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용우회(龍友會)이다.

이 모임의 회원은 1978년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약 80명의 졸업생 중 16명이 만든 모임이다. 지금 대체로 58,59세의 나이로 손 자녀를 본 사람도 있다. 내가 76년에 경제과 교수로 갔으므로, 말하자면 내가 처음 배출한 졸업생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지금 CJ오쇼핑 사장으로 있는 이해선이나 한전의 김형중, 매일유업 계열사 사장으로 있는 명성일처럼 현역으로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직장을 그만 두고 자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나의 다른 애제자인 동국대 교수 임배근, 노원 구청장 이노근, 국세청장 백용호 등과 1,2년 선후배 관계의 같은 또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과는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매년 네다섯 차례 온 가족이 만나고 있다. 등산과 국내외 여행도 같이 하고 있다. 지금도 해외여행을 위해 매달 회비를 적립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대학생활과 졸업 후의 사회생활 그리고 결혼과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그들 또한 우리 집의 모든 것을 알고 일이 있으면 모두 모여 든다. 나는 어떤 자식이라도 이보다 더 가깝고 믿음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제자들이 있어서 나는 늘 삶이 보람 있고 즐겁다.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 청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위한 청탁은 예외였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의 졸업 후 진로를 열어주는 일에도 정성껏 노력했다. 중대 경제과에서는 한국은행 입행시험에 응시하는 졸업예정자가 거의 없었는데 내가 동기를 부여하고 응시토록 기회를 열어주고 시험 준비를 지도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한은에는 상당수의 제자들이 들어가 봉직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대기업체에 적게는 2,3명 많게는 8,9명씩 특채로 취업시켰는데 여기에는 기업인들과의 인간관계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한 기업인이 여럿 있지만 그 중 정주영 김우중 두 분을 꼽을 수 있다.

고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은 어려운 성장환경에서 큰 사업을 일으킨 것이 존경스러웠고 그분은 신문의 내 칼럼 애독자여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가끔 골프도 같이 했다. 종로에 김정구 씨가 기타를 치며 두만강 노래를 즐겨 부른 반줄이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여기도 둘이서 여러 차례 간 일이 있다. 한번은 나의 주선으로 중앙대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정주영회장의 특강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어떤 학생이 경영세습을 할 것이냐고 따지자 이 문제는 3대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하면서 학생도 장가를 가보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챙긴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서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정 회장은 얼마 동안 매년 8,9명을 특채해 주었다.

김우중 회장은 나와 동년배로 1960년대 명동에서 직원 20~30명으로 한성실업이라는 작은 무역상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한은 행원이었던 나를 강사로 초청하여 이른 새벽에 직원연수를 실시한 일이 있어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기업연수라는 것이 없던 때여서 특별한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큰 사업가가 되었다. 대우에서도 현대처럼 상당수의 학생을 받아주었다.

경제학과에 장학금을 내주신 기업인으로는 코오롱그룹 이동찬 회장과 동보중공업 이중기 회장을 들 수 있다. 이동찬 회장은 기업인이라기보다 선비이고 예술가라 하겠는데 이분이 도와준 자금으로 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영문학술지를 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중기 사장은 자청하여 매년 여러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해주어서 그 높은 뜻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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