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관료주의와 복종문화, 탈정치성의 가면을 쓴 정치적 편협성, 시민적 기반의 결여….
우리 사법제도를 겨냥한 날선 비판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문준영(40ㆍ사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역사비평사 발행)은 한국 역사에서 법원과 검찰이 걸어온 길을 살핌으로써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제도와 의식의 뿌리를 추적한다.
저자는 행정과 사법이 분리되고 근대적 재판소 설치령 등이 공포된 갑오개혁 시기부터 식민지적 사법제도가 존속한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미군정기를 거쳐 법원조직법이 제정된 1950년대까지 사법제도에 관한 핵심적 법령들의 입법 과정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를 들여다본다.
특히 한말, 개화기 사법제도 변천의 함의를 비중있게 다룬 점이 눈에 띈다. 이 시기에 우리 스스로 사법제도의 근대화 역량을 축적했다고 보는 기존 관점과 달리, 저자는 이 시기를 조선이 일본의 제국적 법질서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가령 1895년 공포된 재판소구성법은 한국 사법 근대화의 기원적 사건으로 꼽히지만 저자는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 일본 외무성 문서 등을 근거로 이 법의 제정에는 당시 법무 고문으로 활동하던 호시 도오루 등 일본인들이 깊게 관여했음을 입증한다.
한국 사법 역사의 주요 인물에 대해 '신화 깨기'를 시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식민지 시기 항일 변론을 펼쳐 해방 후 지도적 법률가로 떠오른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초대 법무부 장관 이인 등은 헌정 초기 사법 개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시기부터 내려온 사법 체제를 옹호하는 등 내내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비판한다.
문 교수는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은 많았지만 그 문제점이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생겼는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비했다.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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