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나 한·중과는 다른 상황… 제조업 失 농축산업 得
한국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중단된 지 벌써 5년 반. 2008년 이후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가 열리고 있지만, 양측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다. FTA 타결은커녕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조차 기약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급물살을 탄 한ㆍ중 FTA가 어떤 형태로든 한ㆍ일 FTA에 자극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한ㆍ중 FTA가 성사되면 동북아 경제통합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 한ㆍ중 FTA의 추진 속도에 맞춰 한ㆍ일 FTA도 가속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익의 균형을 찾아라
한ㆍ일 FTA는 지금껏 우리나라가 추진한 다른 FTA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칠레, 미국 등과의 FTA 에서는 제조업 수출을 늘리는 대신 농업 피해를 감수해야 했으나, 일본과의 FTA는 정반대다. 제조업 부문에서 손실이 예상되는 반면, 농업 부문에서는 오히려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익의 균형점을 찾기 어렵다는데 있다. 일본은 제조업 분야 관세율이 평균 1.29%(2005~2007년)로 우리나라(3.93%)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 전자, 기계, 철강 등에 대한 일본의 관세율은 이미 무관세 수준이다. FTA로 관세가 철폐되더라도 일본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나 전자 제품의 가격이 추가로 내려갈 여지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자동차, 기계, 전자 등 일본의 주력 수출품목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일 무역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FTA가 체결되면 공산품 분야에서의 무역적자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제조업에서 입게 될 손실을 농업 부문에서 만회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세균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격으로만 따지면 한국산 농산물이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곡물류나 축산물을 대규모로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농업 분야 개방에 몹시 보수적이어서 FTA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FTA를 통해 일본이 제조업 분야에서 챙기는 이득만큼을 한국이 어디서 챙기느냐가 핵심 쟁점일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더 큰 문제
한ㆍ일 FTA의 이해득실을 계산기로 두드리는 건 무의미할 수 있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너무 높은 탓이다.
독도 영유권 갈등, 역사 교과서 왜곡, 신사 참배 등 논란 등 한일 양국간 정치ㆍ사회적 갈등이 매년 되풀이되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5년 넘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도 양국간 정치 갈등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일본의 비관세 장벽도 문제다.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통관절차가 까다롭고 동식물검역이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국제 관행보다 훨씬 엄격한 식품첨가제 허용 기준과 제조업체가 같더라도 수입상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식품검사, 냉동식품에 대한 합성보존료(솔빈산칼륨) 사용 금지 등 일본만의 장벽이 한 둘이 아니다. 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의 경우 국제 인증검사를 인정하는 않는 등 제조업체 기술장벽도 국제 표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일본 사회의 암묵적인 담합 구조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생산자ㆍ소비자, 생산자ㆍ유통업자 간 보이지 않는 담합을 뚫지 않고서는 FTA가 체결돼도 시장 확대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정의하는 보조금 지원 등 전통적인 비관세장벽은 우리나라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점. 자칫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겠다고 강공에 나설 경우 도리어 우리가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한ㆍ일 FTA는 그 어떤 FTA보다 더더욱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ㆍ일 FTA는 경제논리와 더불어 정치적 고려가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한일 관계라는 큰 그림이 그려져야 재협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이강국 日 리츠메이칸대 교수 "일본, 한국시장 확대보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더 관심"
국제경제 전문가인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경제학과 교수는 24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서는 "일본은 농업 등에서 양보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한국은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중장기적 관점을 고려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경제협력 발전과 공동체 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한ㆍ일 FTA가 논의되고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ㆍ중 FTA의 진전이 고착 상태에 있는 한ㆍ일 FTA에 미칠 영향은.
"일본은 최근 한국과 중국의 FTA 추진에 대해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자세다. 양국 정부의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쉽게 진전되기는 힘들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한ㆍ중 FTA 협상이 빨라진다면, 일본도 동아시아 경제통합 주도권 경쟁을 의식해 한ㆍ일 FTA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와 한ㆍ일 FTA의 차이점은.
"지금까지 일본이 맺은 FTA는 대상이 주로 역내 개발도상국이었고, 개방 수준도 중간 정도였다. 반면 한ㆍ일 FTA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래지향적인 지역경제협력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커다란 의의가 있다. 아시아통화기금(AMF) 등 금융 부문 협력과 한ㆍ일 FTA 등 동아시아 지역 FTA 추진이 결합된다면 더 큰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일본 정부와 전문가들이 보는 한ㆍ일 FTA 이해득실은.
"제조업 부문에서 일본이 얻는 이득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일본은 FTA의 추진을 통해 한국 시장을 확대하는 것보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농업 개방에 대한 일본측 인식은 달라진 것이 있나.
"일본은 다른 국가들과의 FTA에서도 농산물시장 개방에 매우 소극적이다. 양허율이 제조업은 평균 97%에 달하지만, 농업 부문은 50% 수준에 그친다. 새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도 농업과 농민보호를 강조하고 있어 농업개방에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 것이 관건이다. 그 전제조건은.
"일본은 농업 등 다양한 부분에서 양보하고 한국이 요구하는 기술 협력 등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은 농업개방 등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중장기적 관점을 더 고려해야 한다. 처음엔 완고한 자세를 보이다 점진적으로 양보하는 일본의 협상 스타일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한·일 FTA… 1998년 11월 논의 시작 공식협상 5년 반째 중단
한국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시작된 건 1998년 11월 양국 통상장관이 민간공동연구에 합의하면서부터. 2000년 4월까지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의 연구가 진행됐다. 한국측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한ㆍ일 FTA가 체결되는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과 후생이 각각 0.07%, 0.19% 감소한다는 것. 대일 무역적자도 60억달러 이상 증가할 걸로 추산됐다. 한ㆍ일 FTA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된 건 당연했다.
2001년 민간 기업의 모임인 한ㆍ일 FTA 비즈니스 포럼이 구성되면서 논의가 다시 재개된다. 포럼은 양국간 FTA를 촉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고, 이는 양국 정상이 이듬해 한ㆍ일 FTA 산관학 공동연구회 설치에 합의하는 디딤돌이 됐다.
8차례의 산관학 공동연구에서 채택한 최종보고서의 결론은 두 나라 정부에 FTA 협상을 건의하자는 것. 이에 따라 2003년 12월 두 나라 정부 당국자들은 서울에서 첫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식 협상을 시작한지 1년만인 2004년 11월 6차 협상을 끝으로 두 나라 FTA 협상은 중단된다. 농업 부문에 대해 꽁꽁 자물쇠를 걸어 잠근 일본 측의 소극적 태도가 협상 결렬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2008년 6월 두 나라는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평행선이다. 작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4번째 실무협의에서도 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을 놓고 샅바 싸움만 반복했다. '선(先) 절충점 모색 - 후(後) 협상 재개'를 주장한 우리측과 달리 일본은 '선 협상 재개 - 후 입장 조율'을 고수했다. 다음 실무협의는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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