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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영화판으로 간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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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영화판으로 간 문인들

입력
2010.05.2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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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영화를 하자고 서로 굳게 다짐하기도 했었지요. 그는 영화로 가고 나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웃으며 이 말을 한 '나'는 시인 황지우, '그'는 영화감독 이창동이다. 세기말을 운운하는 음울한 담론들과,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들이 뒤섞여 있던 1999년 3월, 시집 를 낸 황지우를 인터뷰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황지우는 "초라한 주변부 장르나 언더그라운드 꼴"이 돼버린 1990년대 한국문학에 절망하고 있었고, 이창동은 "언제부턴가 읽을 책, 읽을 시, 들을 말씀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 영상이 문학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영화로 떠났다. 그가 영화계에 입문한 것은 한창 촉망받는 작가일 때, 소설집 로 한국일보문학상까지 받은 이듬해인 1993년이다.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로 24일 폐막한 2010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그의 영화가 칸에서 수상한 건 두 번째다. 2007년에는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아직 '시'를 못 봤지만 그 제목, 전해 들은 내용에서 문인 출신 영화감독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이 감독의 제의로 '시'에 직접 출연한 시인 김용택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시'에는 '시는 죽어도 싸'라는 직설적인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시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시대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찍으며) 시인으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반성했고 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했다." 이 감독은 '시'라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제목을 붙인 자신의 영화에 대해 "문학적 부채의식은 없다"고 했지만, 그 자체로 스스로의 예술의 고향인 문학에 보답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학을 떠나 영화로 간 이들이 몇 있다. 김용택 시인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안 했으면 훌륭한 소설가가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말은, 1990년대 이후 황지우의 표현대로라면 초라한 장르가 돼버린 문학이라는 영토를 직접 거치지 않은, 문학적 재능들도 우리 영화판에 많다는 이야기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을 만든 영화감독 유하도 원래 시인이었다. 그는 마흔 살 즈음에 "내 나이에 시집 여섯 권이나 냈으면 많이 낸 거잖아. 기형도는 한 권밖에 안 냈는데"라며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와 시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다. "발레리는 백 명의 독자를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시에는 그런 (마이너리티의) 매력이 있다. 시란 자신의 정서나 관념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에 반해 영화는 정서나 관념을 최대한 일상화하는 (대중적)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시와 영화는 정반대다. 그런데 그처럼 상반된 작업인데도 서로 만나는 부분이 있다. 명확하게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장면마다 미세하게나마 문학적인 그 무엇이 조금씩 들어가면 꼭 그만큼씩 고급스러워진다."

영화판으로 간 문인들이 한국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할리우드적인 시장논리보다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칸에서 잇달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는 것은, 바로 유하 감독이 말한 시와 영화가 만나는 접점의 구축에 원동력이 있을 것이다. '시'의 수상이 한국영화의 예술성과 사회성 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술은 사회적 항체'라는 명제의 복귀인 셈이다. 아무튼 흥행 성적은 참담하다는 '시',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극장이라도 찾아야겠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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