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를 우측통행자이거나/ 뒷문 통로와 연결된 지하계단에서 은밀한 거래를 즐기며/ 꽃밥을 훔쳐 먹는 언더그라운드 이코노미 정도로 알고 있다.”
정승렬(53) 경기도청 항만물류과 항만정책담당(사무관)이 쓴 ‘공무원’이라는 시의 일부다. ‘그녀’는 국민이나 정치인, ‘우측통행’은 보수적인 성향을, ‘꽃밥’은 뇌물을 상징한다. 현직 공무원이 피부로 느끼는 외부의 편견들이다. 정 사무관은 이런 시선에 대해 ‘밥 대신 흙먼지로 배를 채우며 녹색물결을 일으킨 농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항변한 뒤 ‘삼거리의 중심에서 꼿꼿이 서서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고 시를 끝맺었다. 공무원의 비애를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자리에서 땀 흘리는 공무원들의 자긍심을 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정 사무관이 시집 을 펴냈다. 시집을 통해 그는 공무원으로서 경험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공무원 역시 우리 사회의 떳떳한 주체라고 호소한다. 그는 “혹시 업무 시간에 쓴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잠들기 전 하루 일과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에서 시를 썼다”며 “나에게는 시 작업이 매일 일기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담담히 밝혔다.
26년간 공무원으로 재직해온 정 사무관은 지난 2003년 격월간지 로 등단했고, 필명인 정겸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시집에는 틈틈이 쓴 시들 가운데 ‘공무원’을 포함해 57편을 골라 실었다. 특히 ‘공무원’에는 시작 메모를 첨부해 공무원이란 직업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정 사무관은 “100% 금이란 존재하지 않아 순금의 순도도 99.9%”라며 “전국의 공무원 수는 약 100만 명인데 이 중 0.1%인 1,000명의 비리로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매도한다면 묵묵히 일하는 나머지 공무원들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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