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도 모르는 까막눈에,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지만 꼭 (투표를) 하긴 할거야."
86세 이경순(서울 성북구) 할머니의 호언장담은 실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선거참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까지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었던 할머니에게 선거는 일평생 언감생심이었다. 23일 수소문해 그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그간 행정기록엔 아무 흔적이 없는 무적자(無籍者)였다. 1924년 전남 보성군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재혼한 어머니와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다른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해 출생신고도 못했다고 한다.
"입 하나 줄여보자"는 부모의 뜻에 따라, 끼니 걱정은 벗어나려니 하는 생각에 16세에 결혼을 하러 갔다. 그러나 남편 될 사람은 혼례도 치르기 전에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얼굴도 이름도 몰라. (남편 될 사람) 집에 머문 지 사흘밖에 안됐는데 강제징용 당한 거지. 별 수 있나, 나와야지. 눈치가 보여서 (친정) 집에도 안 갔어."
그렇게 할머니의 떠돌이 생활은 시작됐다. 구걸도 하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평생을 홀로 방방곡곡을 누볐다. 성북구에 정착한 건 10년 전이다. 집도 구할 수 없어 누군가의 지하 방에서 더부살이하는 신세다. 근력이 쇠한 뒤론 매일같이 폐지를 모아, 하루 2,000~3,000원 정도를 벌어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딱한 처지를 눈여겨본 동네 미장원 주인은 지난해 4월 작은 도움이라도 구하려고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호적과 주민등록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엔 오춘규(58) 석관동장이 발벗고 나섰다. 오 동장은 가정법원에 신청해 한양(漢陽) 이씨라는 성본(姓本)을 만들었고, 지난해 12월 마침내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덕분에 한양 이씨의 시조가 된 할머니는 올 1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매달 40만원의 생활지원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도 만들었다. 할머니는 "평생 혼자 벌어서 먹고 살고, 병원도 안 다녀서 불편한지 몰랐는데 (주민등록 생기니까) 선거도 해야 하고 더 불편해"하고 웃었다.
어떤 사람을 찍을 것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연방 고개를 갸웃거린다. "몰라, 몰라. 투표장에 가봐야 알지. 우리 같은 사람 챙겨주는 사람이 누구여?"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표가 6ㆍ2지방선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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